유학 시절, 이런 가정을 보았다. 기러기엄마와 기러기아빠가 함께 사는 것이다. 이른바 ‘동거’가 아니고, 마치 한집에 세든 사람들처럼 그냥 한집에 함께 사는 것이다.
각자 아이들은 데리고 해외에 나와 있지, 집세와 각종 공과금은 비싸지, 그러나 좀더 큰 집이 주는 편리함과 유용성은 욕심나지, 그래서 자식을 데리고 있는 기러기엄마와 자식을 데리고 있는 기러기아빠가 한집에 공동거주를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자면 이상하기 짝이 없지만 또 그 편리함과 유용성을 생각해보면 합리적이기도 한,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으나 막상 생각해보면 말이 아주 안 되지도 않는 그런 삶의 방식이었다. 역할 분담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무거운 물건 나르는 일은 아저씨가 나서서 하는 것으로 보아, 집 안에서 소소한 여러 가지 일을 또 아줌마가 맡아서 하지 않을까 짐작되었다.
이렇게 아예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이런저런 것들을 상부상조하는 싱글맘 집, 싱글대디 집은 더욱 많았다. 한때는 나도 말하자면 싱글맘으로 살았는데, 세탁기가 터진 집 안의 물 퍼내기부터 시작해 토네이도 난민으로 대피소에 애들과 피난하기 등 몸 사리지 않고 씩씩하게 혼자서 모든 걸 해치웠어도 정말 남자 힘이 필요한 일들은 여전히 있었고- 예를 들어 돌처럼 굳어버린 꿀 병뚜껑 열기 같은 것- 요긴할 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도록 동네 아저씨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분들과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한쪽에서는 싱글엄마들끼리의 공동체도 여럿 만들어졌다. 싱글맘 가정이 부모 다 있는 집과 놀러다니려면 눈치가 많이 보여 어울리기 어려운데 아이들은 사정도 모른 채 다른 집하고 놀고 싶어 하니, 아예 싱글맘 집들끼리 팀을 짜서 놀러다니거나 돌아가며 아이들을 맡아주어 학업과 일에 도움도 받는 것이다. 다들 타국에서의 한시적 삶이니 이런 삶의 형태도 당연히 한시적으로 끝났지만, 만약 이게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처지들에 맞는 새로운 공동체 형태가 생겨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빚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다. 떠난 사람은 떠나보내야 하지만, 떠난 사람에게도 사정은 있고 그리움도 여전하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보듬어주고 빈 곳을 채워주고, 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 마음을 확인하기를 소원하고, 그런 기대로 또 살아간다. 같이 살고 싶은데 같이 못 사는 사람들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다양한 가족 모습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따뜻한 영화다.
오은하 직장인·영화진흥위원회 필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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