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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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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사랑이 다시 살아나기를

똑같은, 행운의 설렘 <장수상회>
등록 2015-04-29 19:15 수정 2020-05-03 04:28

*영화 에 대한 대단히 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기혼자 연애 사이트인 ‘애슐리 매디슨’이 최단기간 100만 회원 달성 예상 국가로 한국을 꼽았을 정도로 한국은 불륜이 흔한 사회가 됐다. 아니, 불륜이 잘 들통 나는 사회가 됐다. 통신미디어의 발달로 오히려 들키기가 쉬워진 건가? 간통죄 폐지에서도 보듯 “있을 수도 있는 사생활”이라는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돼 있어서 그런 건가? 불륜은 이제 옛날처럼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이 놀라 수군덕거리던 벼락같은 사건이 아니라 ‘아 그래, 걔도?’ 정도의 일상다반사 취급을 받는다.

이토록 흔해진 불륜을 종종 전해들으면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본인은 어떻게 느낄지 몰라도 옆에서 보기엔 대개 현 배우자랑 비슷한 수준이거나 심지어는 그보다 못한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어차피 비슷한 사람이랑 사랑에 빠질 거, 그냥 집에 있는 사람, 안전한 내 거랑 마저 사랑하지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밖에서 찾아헤매는 것일까?

는 결국, 비슷한 사람과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 못한 채 독거노인으로 살던 노인이 어느 날 이웃집 할머니와 사랑에 빠진다. 저 여자를 왜 어디서 본 것만 같을까? 어째서 언젠가 여기에 와봤던 것만 같을까? 할아버지의 사랑 놀음에 맞춰주느라 건강이 너무 소진된다고 판단한 할머니의 딸은 연애를 그만둬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부탁하지만, 할머니의 생각은 다르다. 늘그막에 새롭게 느껴보는 이 기분이 참으로 소중하고 애틋하다는 것이다. 나인 줄도 모르고 다른 여잔 줄 알고 나를 사랑하는 남자를 지켜보는 여자 마음은 씁쓸하고 속상할 것도 같은데, 할머니는 오히려 반긴다. 저 모습을 언제 보았더라, 나를 보고 설레어하는 저 모습을. 내가 뭘 좋아할까 고민하고 잘 보이려 허세도 부리는 저 치기를, 저 질투를. 집에서 늘 보는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 집에서 늘 보는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저 생동의 기운. 별거 아닌 내 미소를 새롭게 보아주는 저 시선, 내 아무것도 아닌 언사에 보여주는 감동의 리액션.

실은 모든 연애가 시선과 타이밍의 문제인 것처럼 불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외로워 돌아봤을 때 바로 딱 그때 마주쳤던 시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석이 담긴 듯 내 눈빛을 그렇게 보아주던 그 사람. 비록 치매 때문일지언정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을 지폈던 생기 넘치는 순간을 다시 살게 해주는 그 남자와, 할머니는 새롭게 사랑에 빠진다. 같은 남자와 또 한 번 그 설렘을 느껴볼 수 있는 임씨 할머니 같은 희귀한 행운이 이 봄에 결혼기념일을 맞는 모든 부부에게 깃드시기를 소망한다. 이 남자(여자) 안에 있던 그 남자(여자)를 다시 만나실 수 있기를,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오은하 직장인·영화진흥위원회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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