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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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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게 되는 나쁜 짓

악당의 고군분투 <나이트 크롤러>
등록 2015-03-14 16:01 수정 2020-05-03 04:27

*영화 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돼 있습니다.

스톰픽쳐코리아 제공

스톰픽쳐코리아 제공

전남 신안 앞바다 도굴꾼들을 다루는 윤태호의 최신 웹툰 의 태그라인은 “근면성실한 악당들의 고군분투기”다. 악당과 근면성실? 악당과 고군분투? 언뜻 보면 매칭이 잘 안 되는 조합이지만 실은 이게 바로 삶의 모습이다. 세상은 녹록지 않아서 나쁜 일조차 훌륭한 작업 태도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어디 도굴뿐일까? 눈 멀쩡히 뜬 사람들을 속이는 야바위도 돈가방 가로채 도주하는 퍽치기도 과거 한때 번성하던 소매치기의 안창 따기도, 모두 끝없는 노력과 집중에서 나온 유려한 실력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나쁜 짓에조차 훌륭한 목표를 이룰 때와 마찬가지의 미덕이 필요하다는 게 어이없긴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어쩌면 더 큰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쁜 짓은 그 비결조차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초적 뉴스용 영상을 찍어 언론에 파는 뉴스 파파라치들의 세계를 다룬 도 지극히 꼼꼼하고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악당의 모습을 보여준다. 좀도둑질로 연명하던 청년 루는 기적 같은 일거리를 하나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선정적 얘깃거리와 속보전쟁으로 얼룩진 뉴스미디어. 우연히 야밤 교통사고 현장에서 뉴스 파파라치들의 활약상을 발견한 이래, 루는 밤을 새워 길목을 지키고 하나하나 스스로 배워가며 경찰암호에 접근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게 쉬운 돈벌이 같아 시작한 것이지만, 루는 여기서 자기 안의 성공 욕구를 깨우는 불씨를 발견한다.

처음엔 사체를 좀 옮겨놓고 조명 좋게 찍는 데서 출발하지만 얼마 안 있어 범죄 현장을 직접 연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언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윤리적 고려는 전혀 없다. 뉴스는 그저, 피가 많이 보일수록 가까이 찍을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단순한 상품일 뿐,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나쁜 건지 아무런 자각도 없이 루는 오로지 그저 성실할 따름이다. 그는 근면하며 자부심까지 있다. 고생할 자신도 각오도 돼 있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창의적 방법을 찾아내는 재치까지 있다. 그러고는 눈먼 성공을 향해 달려나간다. 모든 가치는 오로지 돈으로 수렴할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이 악당을 혐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의 편에 서게 된다. 매우 불편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같은 업계 업자들에게 구박받을 때는 동정심도 느끼게 되고, 가택 침입을 했을 땐 붙잡히지 말기를 온 맘으로 응원하게 된다. 그가 주인공이라서만은 아니다. 목표는 분명히 나쁜데 추구하는 방식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솔직히 딱 우리 자신 같아서, 그가 하는 짓이 나쁜 일이라는 것까지 깜박하게 된다. 우리 삶 속에 일상처럼 자연스레 스며 있어 시선을 피하기도 힘든 악을 는 보여준다.

오은하 직장인·영화진흥위원회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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