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끝났나 해도 또 시작

그저 <끝까지 간다>
등록 2014-06-20 13:25 수정 2020-05-03 04:27
CJ엔터테인먼트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만약 하늘에서 부감으로 세상사를 내려다보면, 저거저거 저렇게 애쓸 필요 없는데,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 일이 많을 것이다. 저 부장에게 잘 보여둬야 앞날이 창창할 듯해 부조금도 20만원이나 했는데 하루아침에 회사랑 일이 꼬여 그 상사가 날아가버리기도 하고, 왜 우리 베란다 쪽 화단에 당신 개 용변을 보게 하냐며 이웃과 대판 싸우고 온 아파트에 ‘화단 용변 금지’ 서명까지 받았는데 갑자기 화단 자체가 갈아엎어져 창고부지로 바뀌기도 하며, 결혼식 답례 떡을 하나 더 확보하느라 눈총을 받았는데 기껏 챙겨넣고는 깜박 잊어 다 쉬어버리기도 하고, 우리 아이가 사이 안 좋은 친구와 같은 반이 안 되게 하려고 욕먹으면서도 무던히 정치를 하고 다녔는데 느닷없이 그 아이네가 이사를 가버리기도 한다. 그냥 애쓰지 말고 가만있었으면 체면이나 안 상하고 힘이나 안 들었지 싶은 일이 참 많다. 오히려 결과도 더 좋았을 텐데 싶은 일들이다.

위에서 내려다보지 못하고 그냥 다 같이 땅 위에 얽혀 있을 때는, 정신없이 막 달리는 동안에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별거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해보며 할랑하게 달리는 것도 배짱과 여유가 필요한 일이고, 거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게 다 별거 아닌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삶이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의 일부로 막 움직이는 동안에는 도저히 한 템포 늦춰지지가 않는다.

는 온몸의 아드레날린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영화다. 어디서 숨을 쉬는지 모르겠고 내가 지금 기승전결의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문도 모르면서, 주인공과 눈도장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졸지에 함께 끌려간다. 앞뒤 따지고 알아볼 새도 없이, 고건수(이선균)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직 파악도 전혀 못했는데, 그의 범죄를 함께 망봐주고 은폐를 응원하고 가슴 졸이며 생사를 건 어드벤처에 차출된다. 는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다. 그리고, 정신없이 보다보면 어느새 비록 과장됐지만, 일종의 기시감도 느껴진다. 이건 바로, 2014년 우리 삶의 패러디 아닌가? 아무리 악해도 더 큰 악이 있고,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게 되고,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블랙유머 속에,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해도 그게 아니고 이제 끝났나 해도 또 시작이고. 사실, 그런 걸 알 필요나 있으며, 의미나 있으며,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우리 어차피 폭풍 같은 삶, 그저 끝까지 가는 것이다.

오은하 회사원·영화진흥위원회 필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