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관리의 압박에 짓눌리는 많은 여성들이 비현실적인 외모 기준에 맞추기 위해 강박적으로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혜영 제공
“죄송합니다.” 빅뷰티(25·가명)가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와 고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한 아저씨가 탔다. ‘삐~’ 하중 제한 표시가 뜨며 경고음이 나왔다. 빅뷰티의 어머니가 구석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나지막이 내뱉었다. 빅뷰티의 어머니는 고도비만이다. 그는 어린 빅뷰티에게 “넌 예뻐져야 한다. 그래야 부자와 결혼하니까”라는 주문을 되뇌곤 했다. 빅뷰티의 어머니는 늘 자신의 큰 몸을 책망하고 그를 닮은 딸을 보며 속상해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의 제목은 어머니가 스스로 굴욕을 허락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하는 빅뷰티의 사연에서 비롯했다.
외모 계급 사회 옹호하는 ‘외모 민주화’한국여성민우회는 2013년 ‘다르니까 아름답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성형과 다이어트 경험이 있는 10~50대 여성 24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사회가 요구하는 협소한 미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거나 혹은 거기에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다. 이 시대에 외모가 일종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점은 남녀 모두에게서 공통적이지만, 외모 문제는 여성에게 특히 취업·결혼·연애·직장생활 등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참견한다.
저자들은 이 시대 외모 지상주의가 여러 면에서 이중적임을 지적한다. 사회는 여성에게 특정 기준을 제시하며 아름다워질 것을 주문하면서도 그에 맞춰 성형한 이들을 ‘성괴’(성형괴물), ‘환생녀’ 등으로 호명하며 비아냥거린다. 그런 반면 이 사회는 외모 민주화 사회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미모가 천부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불공평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모 민주화 사회라는 진단 또한 “외모 계급 사회를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외모 기준에 닿기 위해 애쓰지 않는 이들은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이로 낙인찍히고, 외모 하위 계급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어떤 수사가 붙건 외모 관리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곳은 아름다움에 목매는 거대한 감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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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녀가 원하기도 전에 성형외과에 끌고 가는 엄마(57·전업주부)도 있다. 코를 높이고 치아교정도 시켰다. 그럼에도 하체비만 체형을 딸에게 물려준 것이 못내 가슴에 맺힌다. “가족 내에서 오히려 여성들이 적극적인 감시자”가 되고 “서로의 몸을 부정하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사회에 의해 체화된 콤플렉스와 불안이 자식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대물림된다.
‘내 몸을 사랑하는 40가지 방법’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은 “어느덧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외모 품평을 즐기는 문화에 익숙해 있는 우리 생활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썼다. 평생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특정한 기준에 끼워맞추느라 아팠다는 오뷰(23·대학생)를 비롯해 이 캠페인을 응원했던 이들이 제안한 ‘내 몸을 사랑하는 40가지 방법’은 소소하지만 희망적이다. 하루를 마치고 맨손으로 비누칠을 하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토닥거려주기, 영화 의 주인공처럼 매일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주문 외우기, 함부로 외모를 지적했던 사람에게 무례함을 일깨워주기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이다. 비현실적인 외모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더 쉽고, 건강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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