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잘 지내니? 얼마 전 술자리에서 네 근황을 들었어. 남편과의 관계가 위태롭다는 친구 녀석의 말이 귓가에 꽂히더라. 누구나 엇비슷하게 사는 게 결혼생활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했지만, 이혼 절차를 밟는다는 얘길 듣고는 집에 돌아와서 밤새 뒤척였지.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던 사려 깊은 성정의 네가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분명 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난 그 과정에서 네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한숨이 나왔어.
현재 관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라서로 그렇게 뜨거웠던 사이가 지금은 왜 그렇게 차가워졌을까. 서로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던 차이가 지금은 왜 그토록 혐오의 이유가 되었을까. 사람이 달라진 걸까? 사랑이 달라진 걸까? 사실 위기는 어느 부부에게나 보편적인 듯해. 나를 비롯해서 주위의 결혼한 이들 가운데 행복해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거의 없어. 어쩌면 결혼제도 자체가 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 수도.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낭만적인 사랑관에 기반한 결혼제도는 환상 위에 세운 집일지도 몰라. 난 지금 만약 너만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물론 속 깊은 넌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실 모른 척하고 싶었어. 지금은 흐릿한 추억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내 삶의 전부였던 너인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 내가 네 곁에 살았을 때, 잘해준 일보다 못해준 일이 많아서 더 그런지도. 하긴 편지 형식을 빌린 이 글 자체가 무례한 짓일지도 몰라. 비록 주제넘고 무례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어, 너에게.
여기 두 권의 책을 보낼게. 먼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40년 동안 수많은 개인과 커플들의 개별 상담을 진행해온 심리학자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적은 책이야. 관계회복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 책의 저자 랜디 건서 박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부딪히게 되는 실망, 권태, 분노, 돌봄, 집중, 단독플레이, 보금자리, 동행 등 8가지 걸림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저자는 걸림돌을 알아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더라도 딱히 꼬집어낼 수 없어서 대부분의 커플들이 위기를 겪는다고 진단하면서 책에 나와 있는 체크리스트를 통해 현재 관계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조언하고 있어.
현재 상황을 직시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가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묻게 하겠지. 김형경의 (창비 펴냄)는 남자의 심리를 들여다보며 남녀의 조화로운 관계를 위한 조언을 건네는 책이야.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남자들, 신화와 소설에서 만나는 남자들의 내밀하면서도 찌질하고, 슬프고도 아픈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한 외로운 인간의 모습만 남아. 그게 남자라는 동물인 듯싶어.
상대방 원망하던 태도가 문제의 핵심“남녀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각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한 생존법, 성격의 왜곡된 측면을 알아차려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불편이 해소되고 관계가 개선된다. 자기 마음이나 행동은 볼 줄 모르면서 상대방을 원망하던 태도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김형경 작가의 이 말이 널 위로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린 어땠을까. 헛소리다. 이 책이 네 선택에 도움이 되길. 안녕.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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