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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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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늘 있으니 무에 두려우랴

무브먼트와 접속한 뜨개질
등록 2013-10-05 16:39 수정 2020-05-03 04:27
청개구리제작소 제공

청개구리제작소 제공

심지가 타들어가 꽝! 터지는 폭탄처럼 마음이 타들어가본 적이 있었나? 이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도시민에게는 사실 좋아하던 밥집 하나 없어지면 안타까운 마음만큼 그 마음, 다른 아픔으로 뻗을 겨를이 없다. 그러니 한번 펑! 하고 터져보지 않는 인생, 촘촘한 시스템 격자 맞춤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한번 뻗어볼까 하다가도 ‘좌빨’ 드립질에 그 다리 각도 살짝 비틀어 허공으로 잉여의 하이킥을 보내고 말게 될 때도 부지기수. (분명 보헤미안적 잉여질에는 여전한 이념 드립질의 지긋지긋함도 있다.) 그래도 이 마음속의 심지, 얕아졌다가도 깊어지는 조절형이라 주변에 훌륭한 이들과 닿으면 깊어지고 올곧아진다.

‘이어지는 농성장’- 목공이면 목공 뜨개면 뜨개, 이것저것 잘도 만들던 친구들이 올 초 나른하고 무심한 봄날, 서울 대한문 쌍용차 농성장 앞에 모여 뜨개를 하는가 하더니 어느 날 ‘내 코가 석 자인 이 시대, 그 코를 씨실 날실 삼아 제주 강정의 돌들, 나무들, 강정천의 다리를 털실 뜨개로 알록달록 감싸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보자’고 제안하며 강정 (코)뜨개 행동을 덜컥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닌가. 이 행동은 강단 미학자라는 신분(?)으로는 드물게 일상 창작과 행동미학의 귀함을 누누이 차근차근 새겨주시는 분부터 목수, 도서관 사서, 디자이너, 회사원, 예술가, 백수, 활동가, 학생 등 참여자의 층위도 다종하다. 이거 크래프트 액티비즘(Craft Activism)이라 할 만한 무브먼트 아닌가? 이 창의 저 창조 말고, 우리는 정말 멋진 창의성을 목도하고 있지 않나?

이들이 권한다. 코바늘 들어보라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앞담화의 따듯함, 손가락 붙잡고 가르쳐주는 코바늘의 접속력, 이어지는 사회성의 자장 안에 들어와보라고. 이 부드러운 힘의 자장 안에서는 일상의 공포도 통속적 욕망도 흐물흐물 부드럽게 다른 감각들과 리듬을 맞추며 어느새 태업적인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슬쩍 미끄러지듯 일어나는 이런 관계와 감각, 아픔에 코 꿰이기, 매력적이지 않은가.

사실 청개구리 요원들은 뜨개에 젬병이다. 특히 청개구리 요원 한 명은 뜨개에 대해 거의 미적분을 대할 때와 비슷한 무분별의 상태에 든다. 그래서 이들은 서울 문래동 모처에 한 달간 운영되는 뜨개의 전술, 도구 개발, 환담을 위한 ‘양털 폭탄 연구실’이라는 수상한 공간을 열었다. 강정 코뜨개 행동의 스핀오프 버전이라 할 만한 이 일시적 연구소 역시 거부할 수 없는 매력투성이. 멸종해가는 도심 공업지대의 문래동 골목은 당신을 상념에 빠지게 할 것이요, 연구실에 마련된 여러 도구와 사물은 당신의 손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맥주 사들고 놀러오시라.

1. 강정 평화를 위한 뜨개 행동은 페북에 ‘이어지는 농성장’을 검색하면 접속이 가능하다. 2. 양털 폭탄 연구실 역시 페북에서 ‘청개구리제작소’를 검색하면 접속할 수 있다.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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