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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하라, 예초기 잊지 말자, 안면보호대

연장 이야기 세 번째… 유기농 고집하면 감내해야 할 수고, 제초제 치지 않고 막내 앞이마 같은 정원을 만들어주는 예초기
등록 2013-05-24 18:42 수정 2020-05-03 04:27

이태 전 우리 곁을 떠난 작가 박완서의 이야기다. 부득이하게 서양식 파티에 참석하고 귀가 뒤에는 된장국에 있는 시래기를 손가락으로 건져 먹어야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잡는 느낌이 들었단다. 도시 살다 시골로 오면 아무래도 이것저것 어수선해지기 쉽다. 내 경험상 갈퀴와 예초기는 시골생활 정리의 끝판왕이다. 박완서의 된장 시래기이며, 디너 코스에서 코냑 곁들인 후식이다. 기계를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만일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예초기를 택할 것이다. 텃밭이건, 정원이건, 논둑이건, 예초기로 자르고 갈퀴로 정리하면 잡초 무성한 귀곡산장이 검은 머리 곱게 빗어넘긴 막내 푸름이의 앞이마 같은 정원이 된다.

예초기는 팔방미인이다. 올림텃밭의 길에 난 잡초도 순식간에 제거하고 돌 틈 사이 혹은 벽돌 바닥 사이에 난 잡초도 제초제를 치지 않고 순식간에 제거한다. 강명구 제공

예초기는 팔방미인이다. 올림텃밭의 길에 난 잡초도 순식간에 제거하고 돌 틈 사이 혹은 벽돌 바닥 사이에 난 잡초도 제초제를 치지 않고 순식간에 제거한다. 강명구 제공

도시인들이 예초기를 쓸 때란 1년에 두 번 벌초할 때다. 그것도 귀찮아 대행회사에 맡긴다. 벌초 뉴스 때마다 땅벌과 더불어 위험한 물건으로 선전되지만 예초기는 안면보호대를 착용하고 긴 바지에 장갑 끼고 조심해서 잘만 쓰면 무척 편리하고 효율적인 기계다. 가볍고, 흔히 구할 수 있고, 구입 및 유지 비용이 용도에 비해 다소 헐하고, 게다가 수리가 용이하다. 예초기는 두 어깨에 짊어지는 것과 어깨 한쪽에 메듯이 들고 자르는 유형이 있는데, 전자가 훨씬 힘이 덜 들고 편리하다. 엔진 유형에 따르면 휘발유를 쓰는 것과 혼합유(휘발유와 오토바이 엔진오일을 20∼25 대 1로 섞은 것)를 쓰는 것이 있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혼합유를 쓰면 휘발유에 비해 힘이 좋아 거친 풀과 잡초도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반면, 작업시 오일이 함께 연소되므로 매연이 심하고 소리가 시끄럽다. 혼합유를 준비하는 과정도 좀 불편하다. 나는 소음과 매연 때문에 힘이 좀 처져도 휘발유 엔진을 선호한다. 꼭 잊지 말아야 할 일은 늦가을에 더 이상 예초기 쓸 일이 없어 보관할 때는 끝까지 작동시켜 기계가 연료 고갈로 제 스스로 멈춰야 다음해 봄에 고장이 덜하다.

엔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초기 끝에 장착하는 헤드(head) 부분이다. 쇠로 만든 날과 플라스틱 끈을 감아 쓰는 두 유형이 있는데 끈을 강추한다. 물론 나는 두 가지를 모두 쓰지만, 예초기 사고의 대부분이 날을 사용할 때 생기기에 10 대 1의 비율로 끈을 더 자주 쓴다. 날은 길고 거친 관목성 풀이나 사소한 잡목을 대량으로 제거할 때 주로 사용하는데, 이 경우에도 날을 잘 갈아서 써야 하고 돌 등 이물질과 부딪혀 날이 상하고 이물질이 튀어 다치지 않도록 지표면과 상당한 거리를 두어 제초해야만 안전하다. 그러나 하다보면 욕심이 동해 밑동 바싹 다가가다가 사고를 치기 십상인데 정말 조심할 일이다. 유경험자의 권위(?)를 믿고 날 대신 끈을 선택했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자동 끈 풀림 헤드를 강추한다. 이 장치는 헤드가 회전시 원심력을 이용해 스프링이 장착된 헤드 아래 바닥을 톡톡 쳐주면 스스로 알맞은 길이로 끈이 풀리는 장치인데, 나에게는 컴퓨터 이상 가는 발명품이다. 정말 편하고 작업시간이 반은 준다. 끈도 여러 가지인데 용도에 맞춰 넉넉하게 1년치를 준비해두면 좋다. 휘발유 사용 예초기는 힘이 다소 부족해 줄이 너무 굵으면 엔진에 과부하가 발생하니, 빨리 닳기는 하지만 중간 이하의 굵기를 권한다.

이렇게 준비한 예초기는 팔방미인이다. 올림텃밭의 길에 난 잡초도 순식간에 제거하고 돌 틈 사이 혹은 벽돌 바닥 사이에 난 잡초도 제초제를 치지 않고 순식간에 제거한다. 물론 자르면 또 올라오지만 유기농을 고집하면 감내해야 할 수고다. 능숙해져서 헤드 회전시 끈의 각도를 수평으로 조절할 수만 있다면 웬만한 크기의 잔디밭 정리는 식은 죽 먹기다. 수년에 걸친 예초기 사용으로 내 작업복 바지는 제주도 갈옷보다 더 튼실한 풀물이 들어 비가 와도 물방울이 튕겨나가는 준(準)방수 작업복이 되었다. 예찬하라, 예초기를. 그리고 잊지 말자, 안면보호대.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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