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숙성된 밭, ‘삽질’ 쾌감

연장 이야기 두 번째… 수레에는 플라스틱 바퀴를, 삽은 돌에 삽날 문지르면 효율적 사용 뒤엔 기름칠해야
등록 2013-05-11 14:19 수정 2020-05-03 04:27

아내가 내 칼럼을 읽고 한마디 슬쩍 딴죽을 건다. “글만 보면 서방님이 농신(農神)이랑 적어도 친구 정도는 되는 줄 알겠네.” 좀 겸손하라는 충고이기도 하겠지만 30년 넘게 한 이불을 쓴 아내는 그렇게 서방님을 지청구할 사람은 아니다. 새벽 안개를 가르며 노란 외발 손수레에 몇 가지 연장을 얹고 유유하게 텃밭으로 향하는 백발의 동네 어르신이 우리 부부의 ‘존엄’이신 농신이다. 십수 년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농신의 밭은 풍성함과 정갈함에서 가히 신의 경지다. 감상은 차후로 미루고 우리는 농신께서 밭으로 출퇴근하시는 길에 동행해 그의 손수레와 연장을 먼저 살필 일이다.

나의 노동 애마 1호 ‘싼티’ 나는 손수레에 얹힌 표준삽, 곡괭이 중간 것, 그리고 오삽. 4~5년 전 외국에 나가 생활한 연구년에 벼룩시장에서 2~3달러씩 주고 산 것이다. 촬영을 위해 버리는 기름으로 한 번 문질러주었다. 강명구 제공

나의 노동 애마 1호 ‘싼티’ 나는 손수레에 얹힌 표준삽, 곡괭이 중간 것, 그리고 오삽. 4~5년 전 외국에 나가 생활한 연구년에 벼룩시장에서 2~3달러씩 주고 산 것이다. 촬영을 위해 버리는 기름으로 한 번 문질러주었다. 강명구 제공

반쪽 시골생활의 으뜸가는 운반 수단은 외발 손수레다. 퇴비를 비롯해 낙엽, 흙, 땔감, 쓰레기, 연장, 그리고 막걸리며 점심 간식까지 모든 것이 이 위에 얹힌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나는 시멘트 작업을 할 때도 아주 유용하게 손수레를 사용한다. 직접 경험해보니 길이 경사지거나 너무 험하지만 않다면 바퀴의 위대함은 두 발의 균형과 구부정한 어깨에 의존하는 알루미늄 지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몸체가 노랑과 초록의 ‘싼티’ 나는 플라스틱인 제품도 있고 얇은 철판으로 만든 제품도 있지만 정작 문제는 대개가 중국산인 바퀴다. 바람 빠지기 일쑤고 펑크라도 나면 난감하다. 그래서 나는 탄력성은 좀 덜해도 5천원 정도 더 주고 튜브 없는 플라스틱 바퀴를 택했다. 길이 질퍽하거나 험하지만 않다면 약간의 힘은 더 들더라도 강추한다. 소소한 우리네 일상 철물 제품을 쓸 때마다 다소 둔탁하지만 튼실하기 이를 데 없는 서양 물건과 절실하게 비교가 된다. 잊기 전에 한 가지 더. 외발 손수레 필수 장착품으로 탄력성 좋은 고무밴드를 강추한다. 철제 프레임에 감아놓으면 짐이 많을 때 그렇게 유용할 수가 없다.

이런 손수레에 꼭 실릴 것이 삽과 괭이다. 4대강 사업으로 희화화된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한가한 봄날 잘 숙성된 밭에서 하는 ‘삽질’이 주는 쾌감은 진정한 희열이다. 그래도 나무를 옮기거나 돌밭을 일굴 때의 삽질은 거친 숨이 절로 나는 무척 고된 노동이다. 그만큼 삽은 잘 고르고 관리해야 한다. 조사해보면 삽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놀랄 지경이지만 내 수준에는 이 중 네댓 가지면 충분하다. 가장 흔한 표준형이 있고 시멘트 작업이나 평탄면 작업에 유용한, 흔히들 ‘오삽’이라고 부르는 넓적삽이 있다. 밭이나 들일에 넓적삽은 필수 아닌 선택이지만 사놓으면 두루 유용하다.

표준삽은 손잡이와 자루가 나무로 된 것이 있고 삽 전체가 쇠로 된 것이 있는데 나는 감촉과 무게 등을 고려해 나무 삽을 선호한다. 내가 지닌 ‘수입 명품 삽’은 손잡이 부분을 철물로 보강하고 날도 품질 좋은 쇠로 만들었지만 너무 무거워 모시고 감상하는 대상이 되었다. 아무려나, 나는 바라만 보아도 든든하니 좋다. 표준삽은 길이가 정확하게 1m라서 야외 작업시 거리 가늠하기에 그만이다. 삽은 사용하기 전에 날 부분을 줄로 갈아서 날카롭게 하면 작업 능률이 오른다. 조경 전문가들은 줄이 없으면 하다못해 시멘트 바닥이나 돌에라도 삽날을 문질러 사용한다. 삽은 사용 뒤 물로 씻고 기름칠을 해둬야 한다. 내 경우 모래통에 폐윤활유를 붓고 꽂아놓는데 삽날이 반질하니 다음번 사용할 때 편리하다.

돌이 많은 밭은 삽보다 곡괭이가 먼저다. 땅속의 돌을 만나면 삽은 그야말로 둔기(鈍器)가 된다. 이럴 때면 뾰족하고 강건한 곡괭이 날이 최고다. 곡괭이는 뾰족과 넓적 두 날이 동시에 장착된 것이 좋다. 삽과 마찬가지로 잘 벼려서 쓰고 관리해야 한다. 너무 무거우면 힘이 드니 휘둘러보고 결정할 일인데 나는 가지고 있는 큰 것, 작은 것, 중간 것 중 중간 것을 가장 많이 쓴다.

사족 하나. 우리의 ‘존엄’인 농신께서도 버스 정류장 앞에서 구멍가게 하시는 마나님의 지청구 앞에서는 ‘존엄’이 사라지니 이런 면에서는 내가 농신 아닌 것이 행운이랄밖에.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