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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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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6년>은 성공할 것이다

개봉과 동시에 뜨거운 반응 얻고 있는 조근현 감독의 영화 <26년>

이 영화의 성공과 이 영화가 꿈꾸는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유
등록 2012-12-04 20:26 수정 2020-05-03 04:27

영화 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실제 고문 피해자들의 생생한 육성 장면이 나온다. 그중 한 명인 설훈 의원(민주통합당·3선)은 고문 당시의 처절했던 경험과 후유증을 얘기하던 끝에 이렇게 말한다. “괴물이 돼서 전두환을 죽이고 싶었다.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를 용서했다.”
역사의 단죄를 꿈꾼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쪽은 전두환을 용서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를 응징하고 싶어 한다. 개봉과 동시에 예매율 1위로 치솟으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영화 은 그런 속풀이를 보여주는 영화다. 은 역사적 단죄를 꿈꾼다.
광주민중항쟁이 있은 지 26년 만에 학살 주범 전두환을 처단하겠다는 젊은 남녀 셋, 그리고 그를 돕는 두 부자(父子)가 손을 잡는다. 미진(한혜진)은 국가대표 사격선수였다. 장래가 촉망받는 소녀였지만 일찌감치 알코올중독 아버지 때문에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술을 퍼마시는 것을 이해한다. 아름다울 미에 나아갈 진. 미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엄마가 자신을 등에 업은 채 계엄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때의 광경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어느 날 ‘그’가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저택 앞에 술을 먹고 화염병을 던지러 갔다가 경호원과 실랑이 끝에 몸에 불이 붙어 죽는다. 일종의 분신자살을 하고 만 셈이다. 미진은 이제 정말 ‘그’를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진은 길거리에서 나뒹굴고 있는 노숙인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걸인에게 돈을 쥐어주며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피눈물을 흘린다. “밥 먹어. 밥 먹고 술 마셔.”
광주의 조폭 넘버2로 살아가고 있는 진배(진구) 역시 이를 박박 갈며 살아오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릴 적 그는 주검 더미에서 엄마가 아빠의 주검을 찾아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개머리판에 맞아 얼굴이 부서진 아빠의 모습에 엄마는 실성했다. 평생 정신병에 시달리는 엄마 때문에 제대로 학교도 가지 못한 그가 결국 조폭의 세계에 끼어들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엄마 한 명. 그는 엄마를 위해 오래전부터 복수를 꿈꿔왔다.
교통순경이 된 정혁(임슬옹)도 눈앞에서 누나가 총을 맞고, 그것도 모자라 개처럼 머리가 짓이겨지는 것을 목격했다. 정혁도 ‘그’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다. 이 모든 암살작전을 기획한 김갑세(이경영)는 사실 계엄군이었지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들이라는 김주안(배수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를 묵묵히 돕는다. 하지만 그에게도 숨겨진 비밀이 있다.
“원작 만화는 비교적 방대한 스토리 구성을 갖고 있다. 특히 암살에 참여하는 인물들에 대한 얘기가 상세하게 펼쳐진다. 영화는 그걸 모두 소화할 수 없다. 일단 시간적으로. 각 캐릭터의 성장 과정과 배경을 얼마나 압축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무엇보다 광주 학살의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고 그걸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설명하느냐가 최대 논쟁이었다고 본다. 너무 자세하게 가면 잔혹해지지만 반대로 가면 영화 전체를 감싸야 할 동기부여가 떨어진다. 우리는 해답을 찾았다.”
“영화적으로 이만큼 매력적 소재 없어”

현실은 늘 상상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상상하던 영화는 현실이 됐다. 영화 이 여러 해 산고를 겪을 동안 미술감독으로 자리를 지켜온 조근현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마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고 한다. 청어람 제공

현실은 늘 상상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상상하던 영화는 현실이 됐다. 영화 이 여러 해 산고를 겪을 동안 미술감독으로 자리를 지켜온 조근현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책무를 다하는 마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고 한다. 청어람 제공

조근현 감독은 이번 으로 데뷔했다. 그는 이전에 프로덕션디자이너, 곧 미술감독이었다. 등이 그의 작품이다. 미술감독답게 그는 광주 학살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 묘법을 찾아냈다. 그건 이 영화의 원작이 어떤 장르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차라리 저런 일은 만화적 상상 속에서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역설의 판타지를 보여준다. 이 연출에서 일정한 허점을 보이고 있음에도(미진은 어떻게 아버지 때의 일을 원한으로 받아들일 만큼 역사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는가, 김갑세는 어떻게 가해자 계엄군의 죄의식을 평생 지켜낼 수 있었는가, 정혁은 왜 하필 경찰의 길을 선택했는가, 주안은 어떻게 고도의 첩보기술 같은 기능을 익혔는가 등등이 지나치게 생략돼 있다), 대중영화로서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둘 거라는 예감을 주는 것도 바로 이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도입부 때문이다. 이 오프닝신만으로도 영화 은 26년, 아니 32년간 우리가 못해온 역사의 복수극을 시작해낸 셈이다.

현실은 늘 영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는 2006년에 이미 그런 계획이 세워지고 실행되지만 2012년 현재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광주학살의 주범은 여전히 서울의 상층부 동네에서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다. 갖가지 경호를 받으며 안가 깊숙한 곳에서 두 다리 뻗고 지내는 그는 가끔 담장 밖으로 낄낄거리는 웃음을 날린다. 그럼에도 현실의 우리는 그를 잊고 산다.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제다.

“원작인 강풀 만화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단 작품의 설정에 매료됐다. 광주학살 때 4천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주변에서 엄마가 죽고, 아빠·누나·삼촌·오빠 등등 무차별적으로 참혹하게 죽어나갔다. 그걸 목격한 아이들이라면 그 내상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때를 잊은 게 아니라 숨기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세 명의 남녀, 혹은 조력자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이 26년 동안 오로지 한 가지 일만 생각하고 살아왔고 그걸 진짜로 실행에 옮긴다는 건, 꼭 상상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현실 가능한 일을 토대로 해야 공감대를 얻는다. 영화적으로 이만큼 매력적인 소재는 없다고 생각했다.”

의 제작자 최용배 대표(청어람)의 말처럼 모두들 이 원작 만화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순간 역설적이지만 ‘대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 대표가 이걸 영화로 만들기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08년 MB 정부로 바뀌자 모든 투자가 철회됐다. 청와대 압력설이 들렸다. 이 작품은 절대 영화로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영화는 포기 직전의 상황에까지 몰렸다.

영화의 흥행이 대선에 영향 끼칠 것

아이디어는 조금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은 크라우딩펀딩을 통해 1만5천 명으로부터 7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모았다. 이게 종잣돈이 돼서 45억원의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일종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 셈이다.

이 성공할 것인가. 성공할 것이다. 이 꿈꾸는 세상은 이루어질 것인가. 궁극적으로는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12월 대선이 그 분기점을 가를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 여부가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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