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가 친하게 지내기란 드문 일이다. 그래도 종종 둘이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그런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영화감독과 제작자, 곧 프로듀서도 마찬가지 관계다. 둘은 대부분 원수처럼 지낸다. 그런데 아주 가끔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남다른 감독과 제작자, 친한 개와 고양이
감독은 제작자를 돈만 아는 장사꾼처럼 대한다. 제작자는 감독을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둘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다. 제작자의 제1목표는 예산 방어다. 돈, 돈, 돈 하고 살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이 그날 점심을 5천원짜리를 먹었느냐, 6천원짜리를 먹었느냐로 제작자는 자기 밑의 제작실장을 쪼아댄다. 치사하게 군다. 감독은 자기 미학만을 고집한다. 예컨대 한 컷 찍겠다며 엑스트라 수백 명을 동원하는 몹쓸 촬영을 요구한다. 그 한 컷에 수천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면 감독은 다 자기 덕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쪽박을 차면 그 책임과 대가는 오로지 제작자가 짊어진다. 둘은 생래적으로 친하게 지낼 수 없다.
(이하 )의 제작자 원동연과 영화감독 추창민은 좀 남다른 경우다. 두 사람은 대화를 많이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미국 여행을 했던 것이 주효했다. 추창민 감독은 를 어떻게 찍을지 그 구상을 설명했다. 원동연 제작자는 이병헌을 비롯해 어떤 배우들을 캐스팅할지 얘기했다. 서로 주고 받았다. 밀고 당겼다.
“예를 들어 감독과 달리 내관 역을 맡은 장광 선생에 대해선 처음엔 엄청 반대했던 사례다. 생각해봐라. 장광 선생은 영화 에서 아이들을 몇 명씩 성폭행한 교장으로 나온다. 관객에겐 그 끔찍했던 캐릭터의 잔흔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흥행을 깎아먹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고? 영화에서 아주 잘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캐스팅에 반대했던 거 미안하게 생각한다. (웃음) 제작자의 판단은 종종 이렇게 미스할 때가 있다.”
제작자 원동연은 지금 한창 업돼 있다. 그럴 법도 하다. 영화 는 상영 첫쨋주에만 200만 관객을 모았다. 이런 식으로라면 500만 명은 너끈하다. “난 그 이상으로 본다”며 원동연은 한껏 어깨에 힘을 준다. 그럼 700만 명? 그랬더니 또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의기양양해한다. 까짓것, 그래도 된다. 제작자가 영화 한번 흥행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일생에 단 한 번 올까 말까 할 기회를 잡은 사람인데 뭘 어떤가. 원동연은 그동안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로 600만 관객을 넘기는 초대박을 쳤다. 하지만 곧바로 를 만들어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까먹었다. 전에 제작한 같은 몇몇 작품으로는 그리 시원하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를 제작하기 전에 그에겐 와 를 제작하라는 의뢰가 왔다. 그는 곧잘 그렇게 굴러 들어온 복을 스스로 걷어차기를 잘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원동연 제작자가 낄낄댄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그래서 원동연과 추창민의 조합은 흥미로운 데가 있다. 실패와 성공의 이면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만났다는 느낌을 준다. 원동연만큼 추창민도 영화를 만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
“서른아홉이 돼서야 데뷔를 했다. 난 별도의 영화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축산학과를 나왔다. 세상에.) 데뷔하기 전 한 10년 동안 이곳저곳 시네마데크나 영화모임에 기웃대던 사람이었다. 그냥 영화가 좋았다. 그러면서 연출부 생활을 했고. 여균동 감독의 , 김성수 감독의 등이 시작이었다. 데뷔작인 는 내가 원했던 작품이 아니다. 원래 데뷔작으로 생각한 것은 였다.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를 했지만 매번 잘 안 되고 엎어졌다. 그러다 가 왔다. 기획도 어느 정도 되고 캐스팅까지 다 된 상태에서 내게 연출 제안이 온 것이다. 영화계에서 입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지만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어르신 전문 감독 “모시느라 힘들다”
의 여세를 몰아 원래 준비했던 를 찍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작은 영화 한 편을 의뢰받았다. 였다. 대박이 났다. 추창민은 인생과 영화는 참 이상하다는 걸 다시 배웠다. 원동연처럼은 아니지만 추창민도 살짝 낄낄댄다. “와 때문에 내겐 어르신 전문 감독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르신들과 되도록 영화를 안 찍었으면 한다. 모시느라 힘이 든다.”
아차, 얘기 좀 해야지. 영화는 추창민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감독이라는 점을 새삼 부각시킨다. 사극과 코미디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데 그 호흡과 리듬이 기가 막힌다. 관객을 극 속으로 빨아들인다. 광해와 하선 역을 맡은 이병헌만이 1인2역을 출중하게 해낸 것이 아니다. 그를 상대했던 영화 속 모든 연기자가 1인2역을 해낸 셈이다. 그 기량을 끌어내고 모아낸 것이 추창민이다. 광해와 허균(류승룡), 중전(한효주), 도부장(김인권), 내관(장광), 궁녀(심은경)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영화에 미친 듯이 몰입하게 만든다. 예컨대 하선이 왕인 척 궁을 거닐다 중전을 만났을 때와 같은 장면이다. 하선은 중전에게 한번 웃어보라고 한다. 웃음을 잃은 지 오래인 중전은 처음엔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요구냐는 표정을 보인다. 그러다 곧 살짝 웃을 듯 말 듯 미소를 지웠다 그렸다 한다. 한효주가 저런 표정 연기를 하다니! 극 후반부에는 안가에서 독극물에서 깨어난 광해와 그의 충복 허균의 일대일 연기 신이 나온다. 이 영화의 압권이자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명장면 중 하나다. 앞으로도 영화를 볼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정 궁금한 사람들은 9월26일 한겨레TV에서 방영하는 을 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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