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얘기다. <mb>이라는 다큐멘터리 얘기다. 꿈도 못 꿨다는 것은 꼭 엄혹했던 1980년대 시절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시기인 약 5년 전만 해도 그랬다. 예컨대 이런 일화. 봉준호 감독의 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이 다시 야심차게 를 기획하고 프로덕션 일정에 착수하려 했으나 돌연 무산됐던 일이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엔 괴물이 한강이 아니라, 청계천에서 출몰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청계천! 이명박 정부에는 금과옥조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서 괴물이 나온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청어람은 그간 와신상담해, 현재 이란 작품을 완성하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은 1980년대에 철권통치를 자행했던 군부 독재자를 26년이 지난 현재, 암살하려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다.
MB‘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MB‘의’ 추억
자, 어찌됐든 <mb>으로 다시 돌아오면 얘기는 이렇다. 김재환 감독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4개 영화관에서 상영을 시작해 개봉 일주일 만에 스크린 수를 11개로 늘렸다. 영화 속에는 이 정부에서 최장수 장관의 재임 기간을 가졌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에서 청계천 사업을 칭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를 생각하면 실소가 터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mb>은 그렇게 긴 설명이 필요한 작품이 아니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MB, 곧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러나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MB‘의’ 추억이라는 것이다. MB‘에 대한’ 추억이 아니다. 이 대통령과 그의 지난 5년간의 집권 과정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등등 하품 나는 시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대통령의 시점으로, 곧 그의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보여줬던 행태와 그것을 지금 시기에 되새겨보는 얘기다.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늘 대상을 객관화한다. <mb>은 그 점에 대한 역발상이 돋보인다. MB가 MB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과연 어떤 마음일까. 그걸 구경한다는 건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자칫, 그리고 흔히들, 이 영화는 반이명박 정부의 노선이 엿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도 일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작은 주제다. 큰 주제는 5년 전에 우리가 치렀던, 그 허무맹랑했던 정치 이벤트가 지금 또다시, 아주 똑같은 모습으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과거로부터 배운 것이 없는가. 우리는 그 과거들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없는가. 지금 이 순간 어느 쪽으로든 정치적 선택을 하는 데 우리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 근데 뭐 꼭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 이 영화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연배우가 워낙 연기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맛이 아주 괜찮을 것이다.”
익지도 않은 풀빵 강요한 5년
맞다. 이 다큐멘터리, 재미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5년 전 대선 유세에서 시장 상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날 풀빵 장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풀빵을 구워서 팔아주겠다고 한다. ‘이거 내가 예전에 다 해봐서 아는데’는 대통령의 전매특허다. 그런데 영 풀빵 굽는 실력이 변변치 않다. 다 익지도 않은 풀빵을 사람들에게 강매한다. 그러며 그는 옆에서 옹성거리는 풀빵 장수에게 자꾸만 소리친다. “불이 신통치가 않아, 불이!” 웬 불 탓인가. 생각해보면 그는 늘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유세 과정에서 인기를 모으며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나름 기여를 한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와 찍은 광고가, 완벽하게 연출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도 새삼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엄청 화나게 만든다. <mb>은 그 광고가 만들어지는 실제 모습, 메이킹 필름을 보여준다. 광고에서 실제 욕쟁이 할머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오랜 경력의 조연급 연기자였다. 모든 것이 다,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조작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상대편인 정동영 민주당 후보의 모습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저잣거리의 음식을 먹어대는 연기라도 잘해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먹는 것이 영 곤혹스러워 보인다. 자꾸 우유를 권하는 막무가내 아줌마에게 정동영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연설하고 마실게요.” 그것 참, 그냥 꿀꺽 좀 마시지. 김재환 감독과 그의 다큐팀은 이런 장면들을 처음부터 찍기도 했고, 구입하기도 했으며, 또 우회로를 거쳐 구해내기도 했단다.
영화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까, 라는 오해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 이 영화는 이미 5년 전에 기획됐고 제작 기간도 그쯤 된다. 1차 완성본은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전석 매진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과 출연자,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퍼포먼스가 매일매일 정신없이 바뀌었다. 요런조런 얘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이렇게 저렇게 구성해놓으면 몇 달 가지 않아 이미 너무 낡은 얘기가 돼버렸다. 그러면 또 새로 쓰고, 새로 구성해야 했다. 이 영화는 지난 5년간 계속 만든 작품인 셈이다. 원래는 지금 버전보다 15분 정도 더 길었다. 그 15분에는 많은 조연급 정치인들이 출연한다. 후보들의 주변을 서성였던 불나방 같은 사람들. 그 추악하고 천박했던 모습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 부분을 다 뺐다. 너무 우울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엔딩 크레디트 장면에는 본편에는 나오지 않던 전여옥 전 의원의 모습이 나온다. 자막은 ‘전 친박 의원 전여옥’이라고 뜬다. 지금 전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김재환 감독이 왜 이 장면을 굳이 끼워넣었는지, 그 의미가 느껴진다. 아마 전여옥씨는 꽤나 불편한 심기가 들 터이다.
+
김재환 감독은 이미 라는 작품으로 스타 다큐멘터리스트가 됐다. 그의 언행에는 풍자와 해학, 재기가 넘친다. 이번 <mb>의 배급은 고영재 PD가 맡았다. 고 PD는 다큐멘터리 흥행의 전설인 의 배급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다큐멘터리에 관한 한 스타 감독과 스타 제작자가 만난 셈이다. 이 영화가, 아무리 적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한들, 쉽게 종영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mb>은 실로 간단치 않은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은 긴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환호할 것이다. 긴장이든 환호든, 분명한 건 두 가지 모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국민의 몫이라는 것이다. 착각하면 안 될 일이다.
대표집필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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