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을 선뜻 보러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우리 자신의 범죄 현장을 둘러보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이 사건의 용의자다. 우린 적어도 실체적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방관의 죄를 저질렀다. 거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영화가, 그것이 상업영화든 비상업영화든,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목적 중 하나라면 이 다큐멘터리는 애당초 가능성이 없는 영화였다. 누가 자신의 죄의식을 직접 확인하려 하겠는가.
진정한 대박 “여전히 배가 고프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화가 개봉된 지 약 3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 은 무려 7만3천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으고 있다. 전국 스크린 수는 6~7개. 평균 40억원이 들어가는 상업영화로 따지자면 전국 200만 관객을 모은 셈이 된다. 이런 걸 두고 진정한 대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화를 배급한 영화사 시네마 달의 김일권 대표는 생각이 다르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아직 아니다. 사건이 지니는 크나큰 이슈를 생각하면 우린 아직, 그리고 겨우 7만밖에 안 봤나 하는 아쉬움을 더 많이 느낀다. 7만이나 봤다고 자족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용산 참사에 대해 생각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회적 성찰이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 영화를 12월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 그것도 물리적 시간만을 따질 때 그렇다. 이 영화의 종영은 아직 멀었다. 아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이 영화는 종영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슬쩍 떠본다. 7만 명이 어딘가. 7만 명이라는 숫자를 가져오게 한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갑자기 반성의 모드를 갖게 된 것일까. 미안해서라도 영화를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이 영화의 공동감독 중 한 명인 김일란 감독이 살짝 웃는다.
“인권위원장인 현병철씨가 몰래 관람하러 왔다가 사람들에게 쫓겨 나갔던 일? 그는 진짜 우리 영화의 홍보맨이었다.(웃음)”
은,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2009년 1월 이명박 정권 초기에 벌어진 피의 재개발 철거 사태를 다룬 작품이다. 당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세입자들은 올바른 보상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본격 시위에 들어갈 채비를 하던 세입자들은 농성 25시간 만에 이들을 해산하러 진입한 특공대원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다. 시너에 불이 붙었다. 농성 중이던 시위대 5명이 죽었다. 그 과정에서 특공대원 1명도 죽었다. 경찰, 검찰, 법원은 이 사건의 원인을 모두 세입자 시위대들에게 몰아붙였다. 그들은 현재 5~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이 농성자들의 잘못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결백이 입증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건 심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농성과 진압 과정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법적·물리적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양쪽 주장은 신물 날 만큼 들었으니…
이 놀라운 것은, 흔히 이런 정치선언적 다큐멘터리가 빠지기 쉬운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시선을 두루 살피려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양쪽의 주장은 어쩌면, 신물이 날 만큼 들었다. 그보다는 당시 벌어진 지옥도의 풍경 속에 진짜 어떤 일이 담겨 있는지가 궁금하다. 은 마치 의 다큐멘터리판을 만들듯 시간별, 심지어 분별로 사건을 쪼개가며 진실을 구축하려 한다. 그 역설의 흥미진진함, 혹은 서스펜스가 다큐멘터리에 강하게 흡착돼 있다. 그런 정서적 긴장감이야말로 에 모아진 관람 열기에 큰 몫을 담당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홍지유 감독은 말한다.
“그렇다. 용산 재개발 문제는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건물 소유주와 세입자, 각각의 권리와 보상 체계, 도심 상권을 촉진시키려는 시와 당국의 경제적 욕구 등이 맞물린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자칫 빠지기 쉬운 오류는, 용산 참사 문제를 그같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의 축으로만 해석하려는 데 있다. 이 사건은 더 큰 틀의 해석이 요구된다. 바로 인권의 문제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모든 어젠다에서 인권은 맨 앞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용산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비극과 그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구석에서도 제대로 인권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기본적 방향으로 설정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럼에도 은 처음부터 끝까지 격앙되지 않는다. 울부짖지 않는다. 오히려 서늘하고 차갑다. 사람들로 하여금 무작정 쉽게 자신들에게 동화하라고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진실을 추구한다.
김일란 감독이 덧붙인다.
“그래서 우리가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로 법정 공방을 꼽았다. 법정에서 어떤 증언들이 오고 갔는가. 사태 한복판에 놓여 있던 사람들은 무엇을 목격했는가. 당사자들, 관계자들의 인터뷰에 힘을 쏟았다. 퇴정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법정 증언을 채록했다. 사건 당일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던 인디 TV들의 방송 테이프, 변호인단에 제출됐던 특공대의 채증 영상물을 모두 모았다. 방대한 자료를 모아놓고 우리는 사건을 재구성했다. 그리고 곧 가공할 진실을 알게 됐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에 그같은 사실이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용산 참사 배경의 진실은 기획된 음모였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가공할 진실이다. 농성이 시작된 지 단 25시간 만에 대규모 진압작전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건 본보기형 사건으로 누군가에 의해 연출된 흔적이 크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가공할 진실, 기획된 음모
그리하여,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두 개의 문’인가를 깨닫게 된다. 두 개의 문은 진실과 거짓의 문이다. 마치 의 빨간 약과 파란 약처럼. 하나의 문을 열면 진실이 보이고 다른 문을 열면 거짓만이 보인다. 진실의 문을 열었을 때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어느 쪽 문을 열게 될 것인가.
용산 참사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한발한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축소해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은 우리 사회가 결코 비극적 결말을 맺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축적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그래서 역사는 퇴보하지 않고 진화할 것이라는 점, 결국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태우리라는 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많은 이들이 세 사람, 김일란과 홍지유 그리고 김일권에게 고마워하는 이유다.
대표집필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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