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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돌아가지 못했다, 감독을 못할까봐

등록 2012-10-16 18:12 수정 2020-05-03 04:27
방은진은 불처럼 으르렁거리며 불처럼 뜨거운 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이번 영화 <용의자X>는 불은 불이되 따뜻한 화톳불이다.  >>사진 한겨레TV 제공

방은진은 불처럼 으르렁거리며 불처럼 뜨거운 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이번 영화 <용의자X>는 불은 불이되 따뜻한 화톳불이다. >>사진 한겨레TV 제공

오동진 영화평론가

시간은 화살이다. 방은진 감독이 2005년 로 데뷔한 이후 이번 두 번째 작품 를 만들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물론 그사이 그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두세 편의 작품이 거의 촬영 단계까지 갔다. 예컨대 같은 작품이 그랬다. 그녀는 몇 번에 걸쳐 시나리오를 고쳐썼고 프로덕션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결국 영화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녀는 실망했고, 슬럼프에 빠졌다. 방은진은 원래 유명 배우였다. 왜 연기자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슬럼프를 이기게 한 건 단편 작업

“이미 나는 다른 궤도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순간, 배우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다시 감독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물론 연기를 완전히 그만두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감독의 길을 고집하는 게 옳다고 봤다. 그래 맞다. 슬럼프를 겪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더 하자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서 단편을 찍었다. 거기서 생기를 찾았다. 그 어렵고 힘든 단편 작업 현장에서 마치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살아 있다는 느낌 같은 것. 그렇게 다시 난 감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방은진을 두고 흔히들 ‘물과 불의 여자’라고 부른다. 그녀는 때론 표표히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때로는, 아니 아주 자주는, 불처럼 으르렁거린다. 영화 현장에서 그녀는 불이다. 그녀의 영화가 불처럼 뜨거운 것은 그 때문이다.

방은진의 새 영화 는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 원제는 이며, 동명 제목 그대로 일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이 이미 2008년에 영화로 만든 바 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그닥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만큼은 비교적 반향을 일으켰다. 적어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들은 그의 또 다른 작품 과 함께 최고작 가운데 하나로 꼽을 정도다. 방은진도 책에 매료됐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미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만큼 부담이 컸을 것이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때는 첫 작품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얘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후 판권이 구입되고 시나리오가 개발됐다. 하지만 여느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일본에서 먼저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업이 많이 지연된 것은 그 때문이다. 같은 질문을 요즘 많이 받는데, 어떻게 보면 내 영화는, 일본 영화와 어떤 점에서 차이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의 고민 같은 게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다. 저쪽에서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작품의 방향이 나왔으니까. 근데 자꾸 전작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한다. 의식적으로 일본 영화를 보지 않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아무리 그래도 카메라 숏이 비슷하면 안 될 것 같아 마지못해 영화를 봤을 정도다.”

‘헌신’과 ‘희생’, 그것을 위한 ‘용기’

는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석고(류승범)란 인물이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여인 백화선(이요원)이 그녀의 조카 윤아(김보라)와 함께 우발적으로 전남편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전남편을 피해 간신히 숨어 살아왔는데 그날 결국 사달이 났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석고는 대신 주검을 유기하고 천재 수학자답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자칭 민완 형사인 민범(조진웅)은 화선이 범인임을 확신하지만 그녀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해 혼란에 빠진다.

이 영화의 실마리는 의외로 영어 제목에서 나온다. 는 영어로 ‘퍼펙트 넘버’(Perfect Number)다. 그리고 그 숫자는 9다. 서울 망원동 둔치에 버려진 사체를 부검한 결과 강력계는 살인사건이 9일에 발생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하지만 9일 사건 발생 시간에 화선과 윤아 두 사람은 모처럼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으로 나타난다. 극장 엘리베이터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도 두 사람은 잡혀 있다. 그래도 화선에겐 전남편을 죽일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결국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되지만 화선은 동요하지 않는다.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화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살인 자백을 강요하는 형사 민범에게 그녀는 불쑥 이렇게 말한다. “왜 다들 내게 9일에 대해서 묻는 거죠?”

영화의 얘기는 여기까지. 이후 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방은진의 가 그 이전의 작품이나 소설 원작과 뚜렷하게 선을 긋고 가는 것은 바로 이 부분부터다. 는 원래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방은진은 이 작품을 미스터리인 척, 사실은 보기 드문 멜로드라마로 둔갑시킨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시대에 점차 실종돼가는 단어들, 곧 ‘헌신’과 ‘희생’, 그것을 위한 ‘용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향하는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작을 보신 분들은 경찰 대신 용의자X인 천재 수학자에 맞서 사건 해결을 담당하는 물리학자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 캐릭터를 없앴다. 전체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사건과 그 사건을 푸는 퍼즐 게임에만 집중시킨다고 봤기 때문이다. 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이야기가 미스터리와 러브스토리를 어떻게 교직시키느냐에 진짜 생명이 있다고 봤다.”

하여 는 그 이전의 작품과 매우 다른 선상에 놓여 있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는 말은 이 대목에서 나온다. 극중에서 형사 민범은 화선이 범인임을 확신하며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제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의 싸움이야.” 방은진도 관객을 겨냥하며 스태프들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이제 누가 마음의 둑을 무너뜨리냐에 달렸어’라고. 영화 후반부는 보는 사람들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든다.

원작과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방은진의 이번 영화 역시 불은 불이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며 뜨겁게 다가서기보다는 따뜻한 화톳불처럼 포근하게 안아주려 한다. 그 품이 쓸쓸하고 외로워서 왈칵 마음이 아파온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외로움이다. 희생과 헌신은 홀로 치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방은진 역시 이번 영화를 찍는 내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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