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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재영은 누구인가

흉포하거나 어수룩하거나, 극단의 캐릭터 오가는 배우 정재영

형사로 출연한 <내가 살인범이다>, 도입부에서 진짜 흉포함 보여줘
등록 2012-11-13 19:59 수정 2020-05-03 04:27

정재영은 사납다. 영화 나 같은 작품을 본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어떤 때는 진짜 깡패, 혹은 형사 같다. 사람들은 거친 밑바닥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이라면 저런 연기가 쉽게 나올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으론 정재영은 꽤나 순하고 어리버리한 인물처럼 보인다. 와 등을 본 사람들의 얘기다. 거기서 그는 백수 혹은 실업자 생활 좀 해본 듯한 인상이다. 사람들은 또, 마음이 웬만큼 착하고 여리지 않으면 저렇게 가슴 짠한 연기를 하기란 어려운 거라고 얘기한다. 자, 도대체 누가 진짜 정재영인가.

새로운 스타일 액션 선보인 오프닝
흉포한 연기를 할 때조차 연민과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이 배우 정재영의 매력이다. 영화 에서 살기 넘치는 형사 최형구 역을 맡은 정재영. 사진 박승화 기자

흉포한 연기를 할 때조차 연민과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는 것이 배우 정재영의 매력이다. 영화 에서 살기 넘치는 형사 최형구 역을 맡은 정재영. 사진 박승화 기자

“굳이 얘기하자면 나는 후자에 가깝다. 실제 모습이 전자 같다면 그거 문제 아닌가? (웃음) 그런데 뭐 사실은… 내 안에 여럿의 내가 있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히 보면 내가 했던 폭력적인 캐릭터들도 다 차이가 있다. 그만큼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런 연기는 오히려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정재영의 신작 는 또 한 번 이 남자, 꽤나 흉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재영은 이 영화에서 지독하고 끈질긴 형사 최형구로 나온다. 그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스스로 자신이 범인이라며 버젓이 나선 한 연쇄살인범을 추적 중이다. 과거에 살인범과 한판 승부를 벌이던 중 최형구는 입가에 깊은 칼자국까지 남았다. 그는 매일 칼자국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너는 내가 꼭 잡는다고. 게다가 그는, 알고 보면, 살인범과 사적 원한이 깊다 못해 아주 처절할 정도다. 최형구는 이 살인범을 꼭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매번 쉽지가 않다. 살인범은 그간, 요리조리 잘도 도망쳐 다녔다.

는 현재와 과거를 교묘하게 교차시키며 최형구와 살인범이 뒤엉켜 싸우는 오프닝 신을 통해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을 선보인다. 는 정재영만큼, 영화는 때로 진짜 흉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프닝 신에서 정재영이 폭발하는 모습은, 늘 그렇지만, 가히 인상적이다.

오늘도 살인범을 놓친 날이다. 마음속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최형구는 홀로 앉아 소주를 빨리 들이켜는 중이다. 술이 금방 떨어진다. 그는 주인 아줌마에게 소주 한 병을 더 달라고 외친다. 아줌마는 그런 그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안쓰러워한다. 바로 그 순간, 와장창창, 출입구 유리문이 박살이 나며 한 정체 모를 괴한이 최형구를 덮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약 7∼8분간의 격투 신과 추적 신. 서로 살의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 끝나는 순간, 시간은 15년 뒤로 점핑한다. 최형구가 똑같은 술집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15년 전 때처럼 그의 마음속을 누군가 와장창 깨고 들어올 것 같은 모습이다. 온몸에 분노가 넘쳐흐른다. 그의 살기에 관객마저 얼어붙을 정도다.

“오프닝 장면만 40시간 가까이 찍었다. 꽤나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면이다. 그리고 영리하게 구성된 장면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정병길 감독이 스턴트맨 출신이다. 그만큼 액션 합을 짜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걸 연기해내기란…, 수족관에 집어던져지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아무리 특수유리로 제작됐다고 해도 그런 장면에선 상처가 나기 마련이다. 여기저기 다치고 깨졌다. 감독도 미안했는지 그 40시간 동안 내 앞에 나서지 않고 카메라 뒤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웃음) 마주 싸우는 상대역이 전문 스턴트맨이기에 망정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 정말 마음에 든다.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스스로 보기에도 오랜만에 상업영화로서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정재영이 새삼 과격한 액션 신에 일가견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의 2001년작 에서도 그랬다. 그는 거기서, 얼굴에 여럿 칼자국을 지닌 채 살벌한 폭력을 행사하는 전직 권투선수로 나온다. 도심 뒷골목에서 애인 전도연과 시비가 붙고 태권도 선수인 듯한 건장한 남자 셋 정도가 만류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정재영은 또 폭발한다. 근데 그럴 때일수록 정재영의 마음속은 좀 복잡한 풍경인 듯싶다. 어떤 남자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잘 알수록 자꾸 그게 반대로 표현되는 사람이 있다. 상대에게 잘해주려고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표현 방법이라곤 오직 거친 욕과 주먹다짐밖에 없다. 그래서 저러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 이유는 왠지 짐작이 간다. 그 때문에 이상하게도 종국적으로는 살짝 불쌍해진다. 여자는 보통, 그런 ‘나쁜 남자’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에서 전도연은 아무리 일상이 지랄스러워도 정재영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폭력적일수록 오히려 불쌍해지는

폭력의 강도가 세지면 세질수록 이상하게도 영화 속 정재영의 모습은 점점 더 불쌍해지고, 그래서 공감하게 만든다. 정재영 연기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영화 속 그를 미워만 할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의 막장 폭력 연기는 한 마리의 맹수가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우리 역시 차라리 저렇게 울부짖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이상한 동경을 품게 만든다.

“처음 액션 연기를 할 때는 오히려 저렇게 멀쩡하게 생겨서 독한 연기를 할 수 있겠어, 하는 반응들이었다. 같은 영화를 할 때는 저렇게 흉흉한 얼굴로 멜로 연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거부당하기도 했다. 때는 사실 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머리도 박박 깎은 상태이긴 했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웃음) 겉으로는 세상과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며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진한 사연이 있고 그래서 가슴으로 다가서는 인물, 내가 배역을 고르는 기준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실 액션영화든 멜로영화든 나에겐 늘 같은 비중으로 느껴진다. 그게 서로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약간 세게 가면 액션이고 약간 느리게 가면 멜로고 그렇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균형 감각이 있다. 늘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캐릭터 간의 차이와 같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가 진짜 ‘내가’일까

는 안타깝게도, 사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아니, 많이 해서는 안 되는 영화다. 마지막 반전을 위해서 장면들마다 복선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살인범이다’의 ‘내가’가 진짜 ‘내가’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그 ‘내가’는 과연 누구일까. 이 영화는 캐릭터 간의 복잡한 관계와 이야기를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교직해냈다. 정재영이 유독 이번 영화를 자신 있어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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