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만드는 시네마 리얼토크 이 에서 한 발 앞서 공개됩니다. ‘영화판의 컬투쇼’를 표방하는 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김영진씨가 극장가에서 화제가 되는 감독과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입니다. 〈한겨레TV〉(www.hanitv.com)에서는 친구 같은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에서는 미처 다 하지 못한 뒷이야기를 싣습니다. 영화 의 곽경택 감독과 영화계의 두 입담꾼이 벌린 이야기판은 〈한겨레TV〉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한 일주일쯤 뒤 감독을 만나는 것은 두 가지 궤도에서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 첫 번째 경우. 영화가 터졌다. 그런데 비평적으로는 좀 후질 때다. 이럴 때는 표정 관리가 어려워진다. 두 번째 경우. 미학적으로는 훌륭하다. 그런데 영화는 쫄딱 망했다. 이럴 때는 한땀 한땀 말 잇기가 불편해진다. 영화도 좋고 흥행도 잘되는 경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영화도 엉망이고 관객도 안 드는 경우는 아예 만나자고 부르지를 않는 법이다.
초심… 데뷔 전 단편 를 장편으로
곽경택 감독과의 인터뷰가 9월5일로 잡혔다. 함께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김영진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보고 이렇게 얘기했다. “거 있잖아, 오늘 말조심하자고.” 곽경택의 신작 는 개봉 뒤 일주일간 처절한 일을 겪었다. 첫 주말을 넘기지 못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극장들이 이 영화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 극장가에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작동한다. 장사가 좀 안 된다 싶으면 좌판을 확 걷어버린다. 돈의 논리라며 다들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곽경택 감독은 이번에 된서리를 맞았다. 하지만 영화는 좋았다. 앞서 얘기한 바로 두 번째 케이스였다.
는 곽경택이 으로 데뷔하기 전, 그러니까 1995년에 만들었던 단편 를 장편으로 확대,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는 당시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거의 20년 전의 나로 롤백하고 싶었다. 그동안 10편의 장편영화를 만들며 크게 흥하기도 했고 크게 망하기도 했다. 그 기복의 세월을 겪으며 나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고 싶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 열정과 의지로 영화를 만들었던 그 시절로.”
하지만 는 단순히 곽 감독의 초심만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거기엔 또 다른 복심이 있다. 그는 지금의 시대를 보며 1980년대, 정확히는 1987년의 엄혹했던 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당시 우리 사회는 혼란의 극을 달렸다. 그런데 과연 25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의 절망을 극복해냈는가. 우리 사회는 정말 조금이라도 진화했는가. 오히려 결코 변화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코미디와 드라마로 촘촘히 포장해내고 있지만, 그래서 늘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업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곽경택의 영화에는 종종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정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지형도를 지닌 채 관통한다. 는 군 병영이라는 작은 우주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 곧 큰 우주를 대구시킨다. 병영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웃지 못할 소동극은 우리 사회가 여지껏 겪고 있는 잔혹한 코미디와도 일맥상통한다. 곽경택이 얘기하려는 주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발견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지긋지긋하고 심지어 위선적이기까지 한 386의 정치 논리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떼굴떼굴 구를 정도로 웃긴 일화들이 발견된다. 그렇지 않겠는가. 군대 생활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다. 허무맹랑하고 가당찮은 사건이 벌어진다. 철저한 계급사회는 역설적으로 그 계급을 허물어뜨리려는 각종의 일탈 행위들을 전제로 존재하는 법이다.
“거위는 착각, 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이 영화의 주인공 낙만(김준구)은 6개월 방위다. 그는 헌병 대대의 30개월짜리 현역 군인들 틈에서 한마디로 ‘밥’으로 살아간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지낼 수밖에 없는 그는 어떤 때는 깍새(이발병)로, 어떤 날은 바둑병으로, 또 어느 순간에는 사진병으로 카메라를 목에 걸고 병영을 활보한다. 그의 눈에 비친 대대장과 중대장, 인사계(특무상사) 등등, ‘윗것’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요지경이다. 그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헌병 현역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어느 날 그는 헌병과 함께 근무를 서면서 영창에 들어온 군대 죄수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시선을 포착하게 된다. 낙만은 이제 서서히 미운 오리 새끼에서 화려한 거위로 탈바꿈할 찰나에 이르게 된다.
“데뷔하고 15년의 세월 동안 영화가 지닌 두 가지 속성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운 오리 새끼다. 이미 거위가 됐다고 착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오달수를 제외하고는 배우 전원을 신인으로만 채우며 나를 거칠게 몰아세운 것도 그런 자각을 스스로에게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한창 영화 공부를 할 때 스승은 곧잘 칠판에 ‘Compromise’(타협)란 단어를 썼다. 그런데 그걸 내가 지금껏 잘하고 있는가. 예술과 돈의 영역에서 진실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 들었다. 이번 영화는 그 내면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작품이다.”
곽경택의 작품 연보를 보면 그가 왜 지금 이 십자로의 갈림길에서 영적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과 직후 그는 로 대박을 쳤다. 이후 그는 과 으로 필모그래피를 이어갔다.
“의 큰 성공 이후 나는 계속 조금씩 까먹으면서 작품을 했던 것 같다. (웃음) 그렇게 성공한 파이를 파먹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니냐는 깨달음이 요즘 좀 든다. 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좌절의 늪에 빠졌을 때 일본의 한 큰손 제작자가 내게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피카소의 작품은 수천 점이다, 그중에서 200 몇 점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마스터피스는 계속되는 노동과 그 노력에서 나온다, 마스터피스는 마스터피스를 만들려는 생각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더 많이, 더 열심히 영화를 찍어야 한다. 아직 내게는 마스터피스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더 열심히 영화를 찍어야 한다”
는 안타깝게도 곽경택의 저주받은 수작이 됐다. 시사회 때 놀랍게도 젊은 여성 관객들이 깔깔대는 걸 보고, 오 이 영화 흥행하겠군 싶었다. 그런데 너무 빨리 개봉 일정을 당겼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똑똑하게 다가섰더라면 지금쯤 두텁게 소통하고 있을 터였다. 곽경택이 일갈한다. “자꾸 상처에 소금 뿌리지 마세요! 죽은 자식 그것 좀 그만 만지라니까!”
맞다.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야 한다. 곽경택은 이 한 편으로 사라질 감독이 아니다. 흔히들 누군가는 스토리는 되는데 텔링이 안 된다 하고, 또 누구는 스토리 없이 텔링만 한다고 말한다. 곽경택은 스토리텔링이 언제나 뛰어난 감독이다. 그는 곧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오래갈 것이다. 의 흥행이 깨졌음에도 곽경택과의 대화가 즐거웠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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