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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짬뽕’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회원
등록 2012-04-14 11:24 수정 2020-05-03 04:26

형 생일잔치 사진에서 내 얼굴을 오려냈다. 서울 압구정동 성형외과 전문의의 칼질이었다. 그렇게 형의 국민학교 4학년 생일잔치 사진은 망가졌다. 대신 내 얼굴은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회원 회원증으로 성공적으로 안면이식됐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이었나, 이듬해인 1983년이었나.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서울 대방동이었던가로 찾아갔고, 거금 5천원을 내고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회원이 됐다. 회원증에 사진을 붙여야 했지만 증명사진까지 엄마가 해주지는 않았던 거다.

1983년 2월 신문 기사를 보자. “지난해 어린이 회원 수는 OB 베어스가 11만937명으로 인기도에서 단연 압도했으며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가 각각 6만 명, MBC 청룡이 3만 명이었다.”

2012년, 당연히 어린이회원을 모집한다. 어디 가지 않았다. 기아 타이거즈의 경우 가입비가 택배비 포함 6만5천원이다. 20년 동안 13배. 어린이회원이 되면 점퍼·모자·티셔츠·경기일정달력·응원수건·회원카드·회원증서를 준다. 20년 전에도 비슷했다. 검정 모자, 소매가 빨간 반팔 티셔츠, 빨간색 가방, 손안에 들어오는 빨간색 스포츠 라디오, 타이거즈 심벌 스티커(사진), 연필, 달력, 회원증. 반팔티에 모자를 쓰고 동네 공터로 나갔다. 사방에는 파란색 MBC 점퍼, 감색 OB 점퍼가 넘쳤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무도 야구 장비가 없었다. 딱 그 정도 동네였다. 어린이회원까지만 허락되는. 당시 운동구점에서 팔리던 어린이 유니폼이 1만원 안팎, 야구 배트가 2500원에서 1만2천원, 글러브가 5천원에서 1만원, 야구화가 5천원 정도 했다. 당시 별책부록 맨 뒷장에는 RC카 광고와 함께 야구복과 야구 장비 일습을 판매한다는 광고가 다달이 실렸다. 5만원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엄마는 “택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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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년들은 야구 모자에 야구 점퍼를 입고 정체불명의 야구 경기 ‘짬뽕’(지역마다 명칭은 다를 수 있겠다)을 했다. 테니스공, 혹은 그마저도 없어서 커버 없이 알맹이만 남은 거무튀튀한 고무공을 들고 주먹으로 때리는 이상한 경기. 공을 쥐고 타석에 들어선다. 주먹을 쥔 손으로 공을 치기 전에 반드시 “간다”라는 말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반칙’이다. 선진 야구 시스템인 사전 예고제를 어린이들이 선취했던 것이다. 포수는 필요 없다. 주자가 공보다 홈에 먼저 들어오면 점수를 내고, 늦었다 싶으면 아웃이다. 눈대중이다. 급하다 싶으면 공으로 맞춰 잡았다. 그러니 아이들끼리 싸움도 자주 붙었다. 글러브가 없으니 맨손으로 공을 잡거나 할아버지 등산모처럼 생긴 학교 모자가 이용되기도 했다. 주먹 대신 공사장에서 굴러다니던 각목을 배트처럼 휘두르기도 했는데, ‘강습 타구’를 모자로 잡다가 모자와 챙이 분리되는 충격적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어디로 가버린 것은 ‘짬뽕’이다. 이제 ‘짬뽕’을 하는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 있을 리가 없다. 사방에 글러브와 방망이가 넘쳐난다. 에서도 사회인 야구팀이 돌아간다. 에는 ‘찍찍이 캐치볼’을 던져대는 무리도 있다.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에는 유독 타이거즈 팬이 많다. 머잖아 ‘주간 홍어’ 소리 듣게 생겼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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