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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잠든 사회, 청년 불만이 깨울 것”

조돈문 비정규센터 이사장 “세습 자본주의에서도 중증… 일자리 질·소득 격차에도 파급”
등록 2025-04-11 23:08 수정 2025-04-16 11:39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이 2025년 3월25일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이 2025년 3월25일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은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의 핵심은 불평등의 ‘탈의제화’다. 시민이 불평등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거다. 하지만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의 지배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아직 변화의 가능성은 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누구를 인터뷰해야 할까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가톨릭대 명예교수)이었다. ‘계급론’을 저술한 에릭 올린 라이트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 교수 아래서 공부했고,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의 동지로서 2018~2023년 노회찬재단 이사장을 지낸 뒤 2024년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펴낸 조 이사장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불평등은 이미 세계 최상위

—한국이 ‘상속계급사회’(Inheritocracy)가 되고 있다는 진단에 동의하나.

“한국에선 실력주의(Meritocracy)조차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지만, 공정한 경쟁을 통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고 출신 배경이 더 중요한 사회로 변했다. 엘리자 필비가 지적한 대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실력주의에서 상속계급사회로 바뀌었고, 한국에도 잘 들어맞는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orld Inequality Database·WID)가 발표한 ‘2022 세계 불평등 리포트’는 세계 각국의 2021년 세전 소득 불평등 지표를 공개했는데, 한국은 소득 상위 10% 인구가 전체 국민소득의 46.5%를 점유한 반면 소득 하위 50% 인구는 전체 소득의 16.0%를 점유했다. 상위 10%와 하위 50%의 점유율 격차가 14.5배인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한 미국의 17배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스웨덴의 6.5배, 독일의 9.7배에 견주면 한국은 훨씬 불평등한 국가에 속했다. 한국처럼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자산의 격차가 크고, 취업하는 일자리의 질과 소득수준의 격차를 좁히기가 어렵다.”

—이렇게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진 데에 부동산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할 수 있나.

“한국은 영국이나 다른 서구 자본주의 국가보다 소득 대비 부동산 자산 비중이 월등히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Revenue Statistic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동산 자산 가치의 크기가 영국, 독일, 스웨덴 같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3~4배에 불과한데 한국은 6.2배나 된다. 열심히 노력하고 저축해도 서울·수도권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어려운데 노동 소득으로 상속 자산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자산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데, 정치권에서 ‘상속세 완화’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정치권이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배하는 보수 양당체제다. 자본과 부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는 국민의힘이 지지기반을 위해 상속세 완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속내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현 정치 지형은 거대 양당에 실망해 정치에 거부감이 있는 정치 혐오층이 절반에 이른다. 이 정치 혐오층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보다 더 보수적인데, 민주당의 ‘우클릭’은 이들을 겨냥한 러브콜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인 15% 정도는 민주당이 무얼 하더라도 지지하리라 보는 거다.”


—정치인 누구도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데, 예상되는 문제는 무엇일까.

“거대 보수 양당은 감세 정책의 최고 수혜자가 최상층 부자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조세제도 개혁을 얘기하려면 한국의 낮은 조세부담률부터 얘기해야 한다. 한국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해야 하는데, 소득과 자산에 세금을 매겨 확보된 재원으로 사회복지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은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다. 지금처럼 감세 이야기만 하면 결국 소득재분배 효과는 줄고, 사회적 약자는 더욱 살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조돈문(2024), 불평등 이데올로기. 40쪽.

조돈문(2024), 불평등 이데올로기. 40쪽.


서구 국가들보다 상속형 부자 많아

—정치가 불평등 문제를 외면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이미 한국에서 청년들이 부모의 재정 지원 없이 자립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노동시장에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면서 청년들의 정규직 일자리 취업 기회는 급격히 줄었다. 경제적 자립은커녕 심리적 자립도 어렵다. 한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부모가 자녀에게 수저를 물려주는 ‘수저 계급사회’라는 지적이 나왔는데, 세습 자본주의 사회 중에서도 중증이다. 한국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 견줘 자수성가형 부자보다 상속형 부자가 더 많다. 미국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의 부모가 어느 정도 부자였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의 이재용과 정의선은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모두 부자였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안다. 이 와중에 교육도 세습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과거 정부 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의 청문회에선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 비리가 논란이 됐는데, 요즘은 불법적 재산 상속·증여나 자녀의 입시·취업 비리가 주된 쟁점이 되고 있다. 노동자와 청년이 윤석열 탄핵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는데, 탄핵을 주도한 정치세력마저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정책에 앞장선다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청년들은 현실 인식이 비판적이지만, 사회 변화 가능성을 비관하고 있다.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물으면 동의하는데, 정부의 개입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지 물어보면 ‘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그들도 모르게 신자유주의적 경험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대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청년 일자리 보장제와 청년 기초자산제를 도입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보장제는 증세 정책을 통해 확보된 재원으로 사회정책 지출을 확대하고, 공공 부문부터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청년들을 우선 채용하는 것이다. 청년 기초자산제는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기초 자산을 제공하여 취업준비 등 미래를 위한 준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기초 자산은 모든 청년에게 보편적으로 지원되지만 자산 불평등 세습의 피해자인 빈곤 청년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지원이 될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이 의제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서 혜택을 누리는 부자들이 부를 세습하며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은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외면한다. 노회찬은 이렇게 외면당한 존재를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 ‘6411 투명인간’이라 불렀다. 6411 투명인간을 대변했던 진보정당들은 원외 정당이 돼 국회에서 불평등 문제를 정치 의제화하기 어려워졌고, 노동운동은 열심히 투쟁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영향력이 크지 않다.”


—기성 정치체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한국의 정당은 지역 기반 정당인 것이 문제다. 이 사람들은 특정 사회 세력이나 인구 집단을 대변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정당에 문제가 생기면 대구·영남 지역을 찾아가고, 민주당은 정치적 위기를 맞으면 광주·호남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보수 양당이 부자 감세를 위해 동맹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사회 계급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강했다면 이 시기에 ‘상속세 완화’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얘기다. 정치 혐오층은 ‘거대 양당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고, 지역 지지기반의 이해에만 충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를 혐오하게 된다.”

 

불평등 의제화하려면 노동법부터

—불평등을 의제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등 체제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주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세상, 보다 평등한 사회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노동이 강해져야 강한 진보정당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0%대를 넘어서지 못하는데 노동자이면서도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나 레미콘 운전 기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급여를 받고 사용자의 직간접 작업 지시를 받는데도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노동자도 산별협약을 통해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바꿔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우리보다 낮은데도 단체협약 적용률이 100%에 이르러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도 산별협약으로 보호받는 구조다. 이런 방법으로 노동자의 개념을 확대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의 균열을 해소하고, 확대된 노동자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진보정당이 활동할 공간이 넓어져야 한다."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오셨는데,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세상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아서 힘들다. 학자로서, 노동 운동가로서 활동하다보니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제일 선배 멤버가 됐다. 연구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달라지는 게 없을 때, 생각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나는 뭘 잘못했나.’ 운동을 계속하고 동료와 후배들을 설득하려면 앞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성세대보다 청년 세대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주택’과 ‘보육’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한국 사회 양극화의 핵심이 집과 교육임을 고려할 때,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본다. 특히 여성 청년이 주택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이 지점을 잘 활용하면 아직 한국 사회에는 진보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동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이 2025년 3월25일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이 2025년 3월25일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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