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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란 보물

양성윤의 하회탈
등록 2012-03-31 11:38 수정 2020-05-03 04:26
2009.6.30 안동 하회탈 만들기 장인 김동표 하회탈 박물관 관장. 윤운식 기자

2009.6.30 안동 하회탈 만들기 장인 김동표 하회탈 박물관 관장. 윤운식 기자

공무원노조 간부로 활동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주중에는 고유 업무에 바쁘고, 주말에는 각종 집회에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집회가 없는 주말이면 꼼짝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자기 일쑤였다.

공무원노조 위원장 임기를 마칠 즈음인 지난 2월 오랜만에 아내와 서울 동묘벼룩시장을 찾았다. 처음 가봤지만 다양한 보물거리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아내는 마음에 드는 옷가지와 가방을 골랐다.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하회탈. 11가지 종류 가운데 양반탈과 각시탈만 남았지만 유독 웃는 모습이 내게 다가왔다. 돌아와 양반탈은 아들 책상 앞에, 각시탈은 딸아이 방에 놓았다.

지난 3월19일은 아내가, 이틀 뒤인 3월21일은 아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아내 생일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각대장’ 고2 아들 녀석을 깨우느라 일어났는데, 거실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미역국이 소담히 담긴 냄비와 케이크, 그리고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편지가 있지 않은가? 아들 녀석이 아내를 위해 준비한 거다. 냄비 위에 붙여둔 메모지에는 ‘미역국은 원래 아기 낳은 산모가 먹는 거래요. 맛이 있을지 없을지.ㅠ.ㅠ’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으며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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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공무원노조 위원장의 역할을 마치고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며 다짐을 하나 했다.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며 ‘익숙하고 낡은 것에서 벗어나 변화와 혁신을 꾀하자’고 얘기했고, 스스로 뭔가 구체적인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시간 지키기와 절주’다. 3월 한 달 그 다짐을 위태롭게 실천 중이다.

아들 녀석에게 그 얘길 했더니 자기도 ‘소박한 다짐’을 하나 했다고 맞장구친다. 바로 ‘지각하지 않기’란다. 아들은 지난해 전교 1등을 했다. 성적이 아니라 지각을. 생활기록부를 확인해보니 최고 절정기인 지난해 10월 등교일수 23일 중 무려 12일을 지각했다. 그런 녀석이 개학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사춘기를 유난히 길게 겪은 녀석이 변하는 징조가 발견되고 있다. 불만이 가득했던 표정도 책상 앞의 하회탈처럼 바뀌고 있다.

하회탈 설화를 보니, 당시 마을에 재앙이 많이 일어났으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한다. 이때 이 마을에 살던 허 도령의 꿈에 신이 나타나 “탈을 만들어서 그것을 쓰고 굿을 하면 재앙이 물러갈 것”이라고 계시를 했단다.

오늘도 우리는 곳곳에서 재앙을 맞고 있다. 4대강,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정리해고,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이 재앙들의 뿌리를 이번 총선·대선에서 막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이 하회탈의 웃음을 되찾을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우리에게 2012년의 봄은 그렇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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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동묘벼룩시장에서 또 다른 하회탈 보물을 찾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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