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제공
인간에게는 흔히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들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숨겨왔던 나의 두 자아는 매일 거울 앞에서 만난다. 바로 ‘속눈썹 붙인 나’와 ‘속눈썹을 뗀 나’.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속눈썹 붙인 김민아가 여기저기 사랑을 준다면, 속눈썹 뗀 김민아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쪽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돈 벌어다주는 직장인 김민아와 일반인 김민아의 차이랄까? 속눈썹을 붙였다는 건, 군인이 총을 들 듯이 지금 내가 밥벌이의 전쟁터에 발을 들여놨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니까.
언뜻 징그럽기까지 한 고무 재질의 속눈썹을 붙인 건, 6년 전 방송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속눈썹과의 첫 만남은 아직도 생생하다. “눈 떠도 돼요?” 몇 번이나 물어본 뒤 눈을 떠보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내 눈은 어느새 맑고 깊고 고운 눈이 돼 화면을 비추고 있었다. 비로소 여자가 된 기분이랄까. 순정만화 속 길고 웨이브 풍성한 여주인공이 된 듯했다. 방송을 할 때면 꼭 속눈썹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입사 초기 스튜디오 녹화는 꿈도 못 꾸고 전국을 돌며 리포터를 했다. 처음 맡은 종목은 씨름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경기를 따라다녀야 했다. 강원도 횡성·영월·인제, 경남 김해, 전북 정읍, 경북 상주까지…. 매일 이어지는 출장 탓에 ‘전문가 언니’의 손길을 빌릴 수 없었다. 방송 준비가 서툴렀던 시기에 메이크업, 헤어 따위도 무조건 ‘셀프 서비스’로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속눈썹 붙이기는 낯선 종목을 중계하는 일보다 더 어려웠다. 속눈썹 하나 눈에 붙이려면 최소 30~40분이 걸렸다. 씨름 중계 가려다가 거울 앞에서 속눈썹과 한판 씨름을 해야 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속눈썹을 포기할 순 없었다. 전북 정읍에 도착한 날, 속눈썹을 손에 쥔 채 무작정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이것 좀 붙여주세요.” 20년 전 신부화장을 해줄 때 붙여본 게 전부라던 미용실 아주머니가 나를 반겼다. 그렇게 닷새 동안 매일 아침 미용실에 들러 속눈썹만 붙이고 출근했다. 출장 마지막 날 미용실에 갔더니 아주머니가 “이거 한번 써볼래?” 하시며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영국 유니언 깃발 문양이 그려진 족집게였다. 아침마다 고생하지 말라며 족집게로 속눈썹 붙이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그 뒤로 정읍 미용실 아주머니의 깜짝 선물은 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다. 이제는 전국을 함께 누비는 내 코디네이터다. 지난해에는 바다 건너 영국 런던올림픽까지 함께 다녀왔다. 이제는 이상하게도 이 족집게가 없으면 속눈썹이 제대로 붙지 않는다. 족집게야, 올 한 해도 잘 부탁해~.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한때 “소울메이트” 한동훈·장동혁…‘원수’로 돌아선 사연

인천대, 유승민 딸 유담 ‘자격 미달’ 탈락하자 교수 채용 중단했다

이해찬 전 총리 오늘 국회서 영결식…생전 뜻 따라 세종 부모 곁 영면

이 대통령 “부동산 정상화는 5천피보다 훨씬 쉽다”

이 대통령 “청와대 직원들, 담장 밖 삼청동·효자동 나들이를”

‘노태우 장남’ 노재헌 주중대사, 고위 공직자 재산 1위…530억 신고

격앙된 친한계 “당사에 전두환·노태우 사진 걸자한 고성국도 징계하라”

‘한때 매파’ 워시 연준 의장 지명에…금·은 가격 ‘역대급 폭락’

“원내대표도 사퇴하라”…국힘, 한동훈 제명 후폭풍 ‘점입가경’

강남 지하철역에 버려진 뱀…알고 보니 멸종위기종 ‘볼파이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