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 제공
중·고등학교 시절 듣던 영어 교재 카세트테이프 모서리에는 늘 비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녹음 방지 탭에 비닐 테이프를 붙여 더블덱에 넣고 나 를 듣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하던 기억, 음악 좋아하던 내 또래들이라면 공유하고 있을 법한 추억이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에 손가락만 대면 듣고 싶은 음악을 척척 찾아내지만, 그때만 해도 음악을 쉽게 듣는 시절이 아닌, 말 그대로 음악을 ‘감상’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친구 집에 가서 친구 형이 듣는 레코드판(LP)을 몰래 꺼내와 친구와 함께 영어 교재 카세트테이프로 옮겨담곤 했으니 말이다.
그때 기억으로는 가요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는 2천원, 해외 팝은 25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돈 없는 학생에게는 저 돈을 구해서 매번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듣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은 없고 음악은 듣고 싶으니, 결국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돈을 모았다. 학교 매점에서 1천원을 내면 괜찮은 점심이 나온다는 ‘그럴싸한 거짓말’이었다. 아들을 철석같이 믿던 어머니는 매일 1천원을 주셨고, 나는 숟가락만 들고 다니며 친구들 도시락을 뺏어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 그렇게 모은 5천원으로 매주 카세트테이프 2개를 정기적으로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때는 돈이 생겨도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사고 싶은 거 안 사고 무조건 카세트테이프만 샀다. 돈을 쥐고 설레는 마음으로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서 에서 본 밴드와 라디오에서 스쳐 들었던 밴드, 그리고 레코드 가게 사장님이 강력 추천하는 밴드의 카세트테이프를 하나씩 보며 ‘이번주에는 뭘 들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사모은 카세트테이프는 곧 100개, 200개가 넘어가고 책상 서랍을 넘쳐 책상 위까지 가득 메우게 됐다. 카세트테이프를 넣어두라며 어머니께서 사주신 작은 장에 마치 레코드 가게 사장님처럼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테이프만 엄선해서 꽂아두는 일이 나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그때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레코드 가게 사장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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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덱조차 없다. 차에도 테이프덱이 없어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길은 없지만, 어릴 적 힘들게 모아온 카세트테이프 하나하나가 나에겐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래서 아직도 이사할 때는 항상 테이프 장과 서랍을 갖고 다닌다. 지금도 녹음실 내 방 책상 옆에 잘 모셔놓았다. 아마 이 녀석들은 내 감성이 완전히 메마르기 전까지는 이렇게 추억과 함께 내 곁을 지키고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워크맨이 작동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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