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자랑 좀 하자면, ‘글씨깨나’ 쓴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물론 ‘글’이 아니다. 서예를 수신의 방법으로 삼으셨던 아버지는 겨우 가나다라를 익히는 연필 잡은 어린 내게 엄격하게 글꼴을 잡아주셨다. 획이 틀리거나, 균형을 잃고 모음을 짧게 내리긋거나 할 때는 나무 자로 작은 손등을 내리치셨다. 나무 자가 내려앉은 손등엔 선명하게 붉은 자국이 남았다. 아버지가 밉고 무서웠지만 또 그만큼 뭔가 해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식은땀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그때 아버지의 나이 넘어, 이제는 이생에서 만날 수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자니 온갖 감상이 솟아오른다. 요즘 부고나 축의금 봉투의 서명, 메모지의 내 글씨체를 보고 달필이다, 힘이 넘친다며 칭찬하는 것을 들을라치면 어김없이 나무 자와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필기구에 집착증이 있다. 특히나 만년필에 대해서 필사적이다.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한국산 ‘파이롯트’ 만년필에 반한 이후로 나는 백화점 몽블랑 매장과 교보문고 문구점을 늘 기웃거리는, 목마른 사슴이 되었다. 요즘 즐겨 쓰는 만년필은 세 자루다. 계약서 작성할 때 쓰는 굵은 촉의 몽블랑과 서신을 보낼 때 쓰는 워터맨, 그리고 낙서에 가까운 메모를 할 때 쓰는 라미다.
이 세 자루에서 단연 고가인 것은 몽블랑인데,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사연도 제법 그럴듯하다. 7년 전 제주도에서 출판인 100여 명이 모여 세미나를 연 적이 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출판을 어떻게 진흥할 것인가의 문제로 머리를 맞댄 세미나(라고 말하고 싶으나 실은 제주도 바닷가 술자리를 그리워한 모임)에서 한 출판사 사장의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문제의 몽블랑을 발견했다. 친하다고 말하기엔 좀 쑥스러운 사이였으나 만년필에 집착하는 나답게 그 몽블랑을 보여달라고 정중히 청했다. 이 순진한 사장은 경계심을 풀고 몽블랑을 꺼내 보였고 그건 결국 나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몽블랑을 마주친 순간, 운명적으로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나 보다. 동석했던 출판인들이 선물하라고 억지를 부리며 내 편을 드는 바람에 사람 좋은 그 사장이 내게 주었던 것이다. 애처가이기도 한 그 사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 비싼 만년필을 제주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어, 어쩌지?” 하는 쇼를 벌였다던가. 그 만년필에 대한 사연이 아내와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몽블랑에 눈이 먼 나는 개인적인 사연은 괘념치 않고 지금까지 즐겨 쓰고 있다. 지금도 가끔 그 사장은 “아, 그 몽블랑! 빼앗기긴 했지만 저보다 잘 쓰시니 좋군요!”라는 가슴 따뜻한 말을 구사한다.
내게 바람이 있다면, 만년필로 쓰는 내 문장이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더욱이 그 사람이 내가 책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원고의 필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고 변함없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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