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울었다.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누구도 익숙지 않은 일이라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를 잃었다. 3남2녀의 막내, 그것도 마흔한 살에 얻은 아들이라 그런지 엄마는 늘 나를 품 안에 끼고 지내셨다. 엄마는 나를 지켜주는 성벽이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었다. 그 엄마가 떠났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엄마가 이제 곁에 없다는 공허감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영정 앞에서 외로움에 떨며 처음으로 나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도 이제 찬바람이 더 거세지면 오십 줄에 들어선다. 그래도 엄마를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철없는 아들로 돌아간다. 매양 그리운 엄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엄마, 도와줘.’ 가슴으로 부르는 나만의 수호신을 일컫는 이름은 언제나 엄마다. 그 엄마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본 계기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글짓기였다.
왜 그랬을까. 대개 그렇듯 학교 일에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던 내가 그날만큼은 떠드는 놈들의 성화와 비아냥에도 아랑곳 않고 글을 써내려갔다. 뭐 딱히 쓰고 싶은 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무심하게 펜을 들었고,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렸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낸 일상에 대해 썼다. 구성을 따지거나 문장을 다듬을 겨를도 없이 선생님께 제출하고선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 전체가 모인 운동장 조회 시간에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문도 모른 채 뛰어나갔더니 대표로 단상에 올라가 교장 선생님께 상을 받으란다. 무슨 상? 알고 보니 며칠 전 써낸 글 때문에 내가 대표로 상을 받는 자리였다. ‘미리 얘기라도 좀 해주면 좋잖아….’ 마음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한 듯해 기분은 좋았다. 그렇게 엄마는 조금은 당황스럽게 내가 스스로에 대해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도록 해주었다.
그때 쓴 글이 교지 (제5집)에 실렸다. 지금도 그 책을 간직하고 있다. 객지살이의 고단함 때문인지, 부질없이 보낸 나날의 게으름 때문인지 책의 몰골은 너덜너덜하다. 표지는 떨어져나갔고, 책술이 두껍지 않은데도 중간에 쪼개져 있다. 이사할 때마다 집사람이 타박하는 신세가 됐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애지중지한다. 처음으로 글재간을 인정받은데다, 내 어린 시절의 소회가 고스란히 기록된 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훗날 내 아들놈들이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지를 떠올리면 불현듯 두려워지는데, 그럴 때 이 글을 읽으면 위안이 된다. ‘그래, 내가 그랬듯이 어떻게 기억할지는 아들의 몫이겠지.’
엄마가 보고 싶다. 한동안 엄마를 떠올리지 못했다. 흠, 나훈아의 나 들어야겠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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