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모가지에는 목줄이 감긴다. 끌고 다니기에 딱 좋은 위치여서 모가지가 선택되었을 거다. 그런데 강아지도 아닌 사람의 목에 꼭 목줄을 감아야 하나? 그것도 온갖 점잔을 빼는 ‘귀족형 남자’들 목에 말이다. 단순한 패션 때문일까? 남자들 넥타이를 확 잡아끌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10여 년 전 어느 날 아내가 와이셔츠 한 벌을 사왔다. 그런데 그 와이셔츠가 수상했다. 보통 와이셔츠와 달리 칼라가 세워져 있었다. 넥타이를 맬 수가 없었다. 입어보니 딱 마음에 들었다. 얼핏 ‘로만칼라’ 같아 가톨릭 신부 같아 보였다. ‘차이나칼라’라고 한다고도 했다. 웬 차이나? 중국집 주방장 복장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했다. 말하자면 ‘스탠딩칼라’다. 그것이 딱 마음에 든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단지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패션은 유난한 편이었다. 청소년 사업가로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검정 양복과 흰 와이셔츠를 싫어했다. 그래서 과감할 정도로 색깔 있는 콤비 양복을 즐겨 입었다. 게다가 와이셔츠도 무조건 색깔 있는 것을 골랐다. 넥타이도 당연히 형형색색이었다. 그것은 나의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 다양성의 추구를 몸으로 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넥타이 자체를 매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도대체 남자란 인물들은 왜 모가지에 목줄을 감게 되었을까 하고. 대체로는 1656년 크로아티아의 크로아트 용병들이 터키 전투에서 승리한 뒤 프랑스 파리에서 개선 시가행진을 할 때 앞가슴에 크라바트(Cravat)라는 장방형의 천을 매고 있었는데, 그것이 주목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넥타이를 프랑스어로 크라바트(Cravate)라고 한다며. 크라바트는 프랑스혁명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가 1815년께 영국 디자이너 보 브러멜에 의해 넥타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고, 이 넥타이를 매야 신사 축에 끼는 풍조가 나왔다고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비록 서구 남성 패션의 역사가 그렇다 해도 이 나라의 전통 한복에는 목도리 말고 목줄같이 매다는 것은 없지 아니한가. 복장도 서양복(西洋服)인데, 목줄까지야….
나는 남자들 복장도 여자들처럼 좀더 다양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냄새가 좀더 많이 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좀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나는 다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스탠딩칼라 와이셔츠를 무척 즐긴다. 넥타이 살 돈이 낭비되지 않아서 좋다. 그때그때 넥타이 색깔 맞추랴, 맸다 풀었다 하지 않아서도 좋다. 목을 꽉 죄지 않아 혈액순환도 잘된다니 더욱 좋다. 왠지 로만칼라가 연상돼 스스로 정갈해짐을 느낄 수 있는 건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이다. 어느새 스탠딩칼라는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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