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래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긴 머리를 고집한 바람에 조회 때마다 앞으로 끌려나가 담임선생에게 구레나룻을 잡혀서 파도타기당한 기억은 악몽처럼 남아 있다. 장발 단속하는 서슬 퍼런 시대에 충실한 경찰 같은 선생이었다고 보는데 우리끼리 그 외양을 보고 ‘불도그’라 부르는 것으로 화를 달랬다. 화가의 길을 선택한 뒤 머리와의 전쟁은 더 치열해졌다. 치가 떨리는 중·고등학교의 기억을 넘어 머리끝이 자유를 찾아 원없이 뻗쳐가던 미술대학 시절, 디자인과 사무실 앞을 지나다 역시 불도그같이 생긴 교수를 만났는데 다짜고자 불러세우곤 내 머리를 탓하는 것이 아닌가. 예쁜 디자인과 여학생들이 지나가는 앞에서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죄인처럼 폭언을 달게 받던 수치스런 모습이 아직 선하다.
그러나 한쪽 눈을 가려버린 머리는 나의 상징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신비주의가 갓 들어온 후배 여학생들에게 먹혀 한쪽 눈이 없다는 둥 내 눈빛을 확인해보자는 둥 관심을 받곤 했다. 이발사 아저씨의 실수로 짧게 깎여버린 날은 얼굴도 들지 않고 삼손처럼 힘없이 강의실을 흐물흐물 돌아다니곤 했다.
개인적인 오욕과 수치스런 기억은 어쩌면 역사보다 더 오래 남는다. 머리카락 이야기는 아니지만 1987년 6월, 특공연대 군인이던 나는 갑자기 혹독한 시위 진압 훈련을 받았다. 3일 동안 군복과 군화를 벗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드디어 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우리는 탄약고 실탄을 트럭에 싣고 대기했다. 광주와 5·18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갈등했다. 다행히 출동하진 않았지만 끌려다니며 어찌할 바 몰랐던 나의 모습은 지금도 돌이킬 때마다 치욕이다. 나쁜 역사가 나를 치욕스런 인간으로 만들었던 순간, 그저 갈등하고 있던 자신을 나는 아직 용서할 수 없다. 다행히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광주의 기억을 다룬 영화 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5·18 당시 학살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역사가 나에게 떠넘긴 부채를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싶었다.
제대 뒤 다시 원없이 머리를 기를 수 있게 되었으나 손쓸 도리 없이 좌절되고 만다. 그토록 오랜 세월 세상과의 접경 지역에서 투쟁해오던 머리카락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모자를 찾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머리카락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의 고리를 끊겠답시고 호탕하게 머리를 밀어보지만 그건 제스처에 불과하다. 점차 모자는 나의 옷 중 하나가 돼버렸고 이젠 모자로 멋을 부리고 다닌다. 요즘 나에게 바라는 것은 모자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그건 머리카락을 기를 때와는 다른 종류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모자를 벗어던진 온전한 내 모습만으로 다른 이들과 만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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