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에서 만난 내 코디네이터인간에게는 흔히 두 개의 자아가 있다고들 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숨겨왔던 나의 두 자아는 매일 거울 앞에서 만난다. 바로 ‘속눈썹 붙인 나’와 ‘속눈썹을 뗀 나’.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속눈썹 붙인 김민아가 여기저기 사랑을 준다면, 속눈썹 뗀 김민아는 사랑받기를...2013-03-02 13:36
말없는 놈과의 연애 연장전지난해 여름부터 아침형 인간이 됐다. 근로조건 계약을 변경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져서다. 여기서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라 함은, 남들은 퇴근 뒤 집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을 나는 오전에 보낸다는 뜻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비비며 라디오를 켠 뒤 10년 된...2013-02-09 20:28
머스트 해브 사상 최저가‘당신의 머스트 해브’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제의에 처음 든 생각은 ‘내게 그런 아이템이 있나’였다. 사물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라 ‘없으면 큰일 나는’ 물건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고민을 시작하던 찰나, 머...2013-01-25 20:34
21세기 집단지성의 결정판나는 사전을 좋아한다. 사전(辭典)이건 사전(事典)이건, 특정 주제를 항목별로 색인한 종류의 책을 선호한다. 서가만 슬쩍 훑어봐도 수십 종의 사전이 책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백과사전의 대명사였던 브리태니커 영문판 전집은 당연하고, 철학사전, 신화사...2013-01-11 11:06
밥 팔아 들은 음악중·고등학교 시절 듣던 영어 교재 카세트테이프 모서리에는 늘 비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녹음 방지 탭에 비닐 테이프를 붙여 더블덱에 넣고 나 를 듣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녹음하던 기억, 음악 좋아하던 내 또래들이라면 공유하고 있을 법한 추억이다. 요즘이야 스마트...2012-12-28 14:20
딸과 동갑인 그놈세상에 와인만큼 많은 얘깃거리를 품고 있는 게 또 있을까? 시큼 떨떠름한 오묘한 맛의 차이는 물론 빛깔이나 산지 또는 ‘빈티지’라 불리는 포도 수확 연도에 따라 나누다 보면 그 종은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인가, 와인에 따라붙는 찬사 또한 그것의 가짓수 ...2012-12-15 02:43
껍데기를 벗기 위하여머리카락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래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긴 머리를 고집한 바람에 조회 때마다 앞으로 끌려나가 담임선생에게 구레나룻을 잡혀서 파도타기당한 기억은 악몽처럼 남아 있다. 장발 단속하는 서슬 퍼런 시대에 충실한 경찰 같은 선생이었다고 보는데 우리끼리 그 외양...2012-11-30 17:14
엄마의 선물많이 울었다.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누구도 익숙지 않은 일이라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를 잃었다. 3남2녀의 막내, 그것도 마흔한 살에 얻은 아들이라 그런지 엄마는 늘 나를 품 안에 끼고 지내셨다. 엄마는 나를 지켜주는 성벽이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2012-11-16 18:51
6년의 핸디캡나는 모자에 ‘부정적’이다. 싫어한단 표현과는 조금 다르다. 모자를 쓰는 행위는 뭔가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행동 같다. 모자가 괜히 탈모의 이유로 지목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는 공기와 통해 있어야 하며 고온보다는 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내 두상이 크고 옆짱구가 심...2012-10-20 14:28
성즉시공 공즉시성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치과에서 쓰는 마취용 주사다. 스테인리스 쟁반에 놓인 팔뚝만 한 마취주사기의 기다란 바늘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치과의사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아온 데서 비롯된 일종의 트라우마다. 몇 주 전 어금니 하나를...2012-09-26 14:35
‘나비넥타이 부대’는 없나“나비넥타이가 잘 어울리시네요.”첫 만남에서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는 내게 많은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말이다.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누구나 하면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다. 중년의 기혼 남성이라면 대부분 나비넥타이를 맨 경험이 있을 텐데 바...2012-09-15 16:21
저녁 8시 부엌을 위하여 화식(火食)이 오늘날의 인류를 만들어냈다는 건 정설이다. 화식으로 재료의 선택이 다양해졌다. 먹을 수 없던 힘줄과 가죽, 뼈도 먹을 수 있게 됐다. 영양을 몸에 더 채운 인류는 그걸 에너지로 바꾸었다. 그 힘으로 더 많은 개간과 수렵, 채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12-09-01 10:56
1만여 권 책을 뱃속에 품은낡은 손가방이 하나 있다. 검정색이다. 구식이지만 흔한 가방이다. 10여 년 전 성균관대로 출강할 때 아내가 기념으로 사주었다. 내 소박한 꿈의 하나가 단재 신채호 선생을 닮는 것이었다. 주필에 이어, 단재가 박사가 된 성균관대에서 강의 요청을 받고 기뻐하자 아내가 ...2012-08-15 17:53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필살기 대놓고 자랑 좀 하자면, ‘글씨깨나’ 쓴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물론 ‘글’이 아니다. 서예를 수신의 방법으로 삼으셨던 아버지는 겨우 가나다라를 익히는 연필 잡은 어린 내게 엄격하게 글꼴을 잡아주셨다. 획이 틀리거나, 균형을 잃고 모음을 짧게 내리긋거나 할 때는 ...2012-08-02 09:43
목줄 같은 것은 없지 아니한가 강아지 모가지에는 목줄이 감긴다. 끌고 다니기에 딱 좋은 위치여서 모가지가 선택되었을 거다. 그런데 강아지도 아닌 사람의 목에 꼭 목줄을 감아야 하나? 그것도 온갖 점잔을 빼는 ‘귀족형 남자’들 목에 말이다. 단순한 패션 때문일까? 남자들 넥타이를 확 잡아끌면 위험할...2012-07-20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