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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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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에게 경영권을!

기존 경제학의 맹점 파고들며 노동자 경영권의 논리 설파하는 철학자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등록 2012-03-31 11:28 수정 2020-05-03 04:26

신자유주의를 주조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은 기업을 소유한 주주들의 도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주들이 기업을 소유하는 것은 자명하고 당연해 보인다. 영미권에서 학위를 받은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이 주주자본주의 체제를 불변의 현상으로 간주한다.

소유와 경영의 일치는 신화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의 (꾸리에 펴냄)는 이런 인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것은 ‘왜 기업의 사장은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비판적인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자를 직접 선출하자는 주장이다.

저자는 “기업의 경영권을 주식을 가진 주주들이나 단지 몇%의 지분밖에 갖지 못한 자본가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과연 현대 주식회사의 원리상으로도 합당한 사고인가”라고 되묻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1.86%, 순환출자한 기업 지분을 다 합쳐도 15.9%에 불과하다. 또한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에 어떤 경영상의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를 ‘오너’로 부른다. 비단 이건희 회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벌 총수들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던 까닭에,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의 상법에는 이른바 ‘사실상의 이사’ 조항이 신설돼 이들의 경영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소유와 경영의 일치는 신화에 불과하다. 더 이상 속지 마라.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가 아니다.”

총수의 소유권이 신화라는 지적에서, 노동자의 경영권은 어떻게 연역되는가. 저자는 대표적인 자본주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연기금은 노동자들의 예금이다.” 김 교수는 “연기금이 어떤 기업의 최대 주주일 때, 그것은 실질적으로 익명의 노동자들이 최대 주주라는 말과 마찬가지”라며 “그렇다면 익명의 노동자들이 출연한 자본으로 매입한 주식의 주주권을 노동자들의 경영권을 위해 행사하는 것도 사리에 맞는 일이 아니냐”고 묻는다. 연기금이 국내 최대의 기관투자가인 상황에서 그의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저자의 비판은 비단 주류 경제학자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재벌의 기업경영권을 근원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비판적 경제학자들도 한계를 지녔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수단의 국유화로 상상력을 제한시킨 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괴로워할 뿐 자본주의 극복의 ‘다른 길’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한 바 없는 진보 진영도 딱하기는 매한가지라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위기가 심화되는 현실을 모두 신자유주의의 원죄로 돌릴 뿐 정작 자본주의 ‘내부’로부터 자본주의를 극복할 방안 같은 것은 제시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자인 저자가 외도(?)를 한 이유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을 돌려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시트 공정의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뒤섞여 차량 몸체에 부품을 장착하고 있다. <한겨레> 김광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을 돌려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현대자동차 울산2공장 시트 공정의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뒤섞여 차량 몸체에 부품을 장착하고 있다. <한겨레> 김광수

독일, 노동자 경영권의 전범

노동자가 사장을 선출한다는 소리가 허황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원(주주)들이 사장을 사실상 선출하는 회사는 국내에도 여럿이다. 당장 기자가 밥을 벌고 있는 한겨레신문사를 비롯해 경향신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해외에선 대부분이 주식회사인 유럽의 교향악단 가운데 대표적으로 독일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직접 지휘자를 선출한다.

노동자가 직접 경영을 하면 투자를 하기보다 이익을 나눠먹으려 하기 때문에 망하기 십상이라는 기존 우파 경제학자들의 반대 논리가 떠오르는가. 2000년 4월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은 모기업을 노동자들이 인수해 연매출 700억원대의 탄탄한 기업으로 키운 키친아트(주)를 차치하더라도, 노동자들이 경영에 직접 나서 죽어가던 회사를 살린 얘기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노동자 경영권과 관련해서 독일은 하나의 전범이 될 만하다. 독일에서는 노동자의 경영진 참가율이 평균 3분의 1에 달하고 5인 이상의 사업장에는 노동자평의회가 구성된다. 해고를 하려면 노동자평의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독일은 전후부터 이런 체제를 유지했다. 세계경제 위기에도 독일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노동자의 경영 참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점도 주효했다.

1987년 독일 유학 시절부터 이 문제의식을 발전시켜온 저자는, 책 속에서 자본주의 변천이 오늘의 기업국가에까지 이른 역사적 과정, 소유권과 경영권에 대한 법철학적 규명, 나라별 주식회사의 지배구조 등을 조목조목 살핀다. 특히 ‘자유와 소유 그리고 권력’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다룬 대목은 저자의 전공이 철학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며 이 책을 다른 경제학 책과 구별짓게 한다. 경제학적 배경지식이 없어도 수월하게 읽힌다는 점, 마르크시즘과 생태주의, 그리스 철학과 서로주체성 철학 등에 대한 어깨너머의 교양을 제공한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만하다.

지은이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기업을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노동자들에게 경영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많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하나의 법률 조항, 바로 이것이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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