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2025년 3월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 기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가 기각되자 여론은 크게 술렁였다. 탄핵 반대파들은 윤석열 탄핵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 또는 각하될 수 있다며 크게 고무됐다. 반면 탄핵에 찬성해온 시민들은 기대를 벗어난 결론에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이 각하 혹은 기각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기각은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법적으로 완전히 말이 안 되지는 않는다. 한덕수 총리가 위헌·위법적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기간이 하루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 의도나 중대성을 판단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시각은 있을 수 있다. 정형식·조한창 두 재판관이 의결정족수 문제를 들어 각하를 주장한 것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200석론’을 주장하는 헌법학자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 쪽에서 주장하는 각하 논리는 이런 수준이 아니다. 국회 탄핵소추단이 내란죄를 철회했으므로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재의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다. 국회 탄핵소추단은 형사적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을 주장했을 뿐 내란죄 요건에 들어가는 행위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중요 쟁점이다. 탄핵소추안의 내용과 별개로 헌법재판소가 쟁점을 재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박근혜 탄핵 때도 확인된 사실이다. 이게 모두 잘못됐다는 윤석열 쪽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그건 헌법재판소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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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이 일사부재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또 다른 각하 논리는 아예 틀린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1차 탄핵소추안과 2차 탄핵소추안은 다른 회기에 처리됐다. 국회법은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고 돼 있을 뿐이므로 이것만으로도 앞선 주장에는 이유가 없다. 이건 고등학교 관련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상식이다. 이를 주장하는 쪽은 법조 용어인 ‘일사부재리’라는 말을 대신 쓰고 있는데, 여기서 이런 혼동이 왜 빚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절차적 문제를 주장할 수 없다면 윤석열이 파면을 피하는 길은 더욱 좁아진다. 앞서 헌법재판소가 정리한 쟁점 5가지는 비상계엄 선포 과정, 포고령 1호 공포, 군경 동원 국회 봉쇄, 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정치인·법조인 체포조 운용 지시 등에 대한 것이다. 이 중 하나에서라도 중대한 헌법 위반 판단이 나온다면 윤석열은 파면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따져봐도 이 5가지 모두에서 중대한 헌법 위반이 없었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설명에도 한사코 불안하다며 방심할 때가 아니라고 훈계하는 ‘민주 시민’이 많다. 이들이 이러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심판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간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당사자야 어떨지 몰라도 제삼자가 볼 때는 흠이 없는 결정문을 작성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고, 법리에 충실한 해석을 각각의 재판관이 독립적으로 하려다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리라 본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대통령 탄핵 사례와 비교해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러한 해석도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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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재판관들이 헌법재판소 외부 상황을 고려하거나 아예 외부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의도식 음모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결과가 전원일치가 아닌 것도 이러한 해석의 근거인 것처럼 회자한다. 전원일치가 아닌, 재판관들이 제각각의 의견을 유지한 것과 유사한 구도가 윤석열 탄핵심판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김민석 의원이 ‘윤·이 동시 제거론’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시각을 반영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얘기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헌법재판소가 파면이 아닌 다른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헌법재판소 내부에 외부 세력과 내통(?)하는 재판관이 있다면, 선고 일정을 늦추도록 쟁점을 늘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침 보수 세력은 헌법재판소에 최근까지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는 한덕수 탄핵심판 선고를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보다 먼저 내놓을 것, 둘째는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이후로 할 것. 공교롭게도 최근의 일정을 보면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요구를 결과적으로 모두 수용한 셈이 됐다.
이 대목은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항소심 이후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가 나오길 바란 이유를 가늠해보면 더 이해가 쉽다. 이재명 대표 항소심 선고는 2025년 3월26일에 나왔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에게 유죄가 선고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되리라 예상했다. 국민의힘은 사법부에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6·3·3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해왔다. 이 원칙대로라면 대법원 선고는 6월26일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일인 4월18일 직전에 선고한다면, 조기 대선은 6월 초중순에 열리게 된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이재명 대표에게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되고, 대선을 치르기 직전에 판결이 확정되는 꼼수를 꿈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윤·이 동시 제거론’을 근거로 한 여의도식 음모론은 이런 계산법을 기저에 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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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헌법재판관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이러한 음모론이 어느 정도나 사실과 가까운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군다나 국민의힘의 예상과는 달리 이재명 대표에게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게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사태가 제때에 극복되지 않아 생긴 현상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윤석열 구속 취소 이전까지는 헌정을 수호하는 쪽과 부정하는 쪽의 대립 구도가 명확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체제의 중심을 잡아야 할 헌법재판소가 의심의 대상이 되면서, 이제는 헌정을 수호한다는 게 무엇인지 자체가 의문인 상황이 됐다. 여기서 우리는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을 위기로 규정한 ‘옥중수고’의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이 과도기에 대안이 준비돼 있다면 역사는 진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퇴행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대안은 희미하고 퇴행은 모든 준비를 마친 듯한 모습이다. 윤석열과 그를 옹호하는 자들의 적극적 행위 탓이다. 이들은 대안을 말하는 시민들을 따라다니며 대놓고 위협하고 있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헌정 수호를 위해서, 헌법재판소가 빨리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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