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찾은 우리는 문학이나 미술, 음악 거장의 집들을 부러 방문하곤 한다. 작품이 탄생한 장소를 어루만지며 영감의 자그마한 조각이라도 얻길 바라는 마음, 타인의 공간이 주는 생경함에서 비롯한 묘한 자극 같은 것들이 뒤엉킨 상태에서 우리는 작가의 집을 들여다본다. 좋아하는 아이가 지금 뭐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것처럼 작가의 집을 찾아 살아생전 작가의 동선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마치 작가가 된 듯 창가에 서서 사색에 빠져보기도 한다.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독자들의 이런 욕망을 읽은 책이 나왔다. 미국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J. D. 매클라치 교수는 (마음산책 펴냄)에서 19세기 미국 대표 작가 21명이 자신의 대표작을 집필했던 집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6권의 시집과 2권의 에세이를 출간하며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매클라치 교수는 아마도 앞서 말한 욕망과 비슷한 심정으로 선배 작가들의 집을 찾았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점은 작가들의 작은 책상이다. 수많은 독자를 휘어잡은 펜촉은 무언가 남달라야 할 것 같고, 문학이 시작된 공간도 여느 서재나 책상과 달라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작가들의 책상은 인터넷 서핑과 컴퓨터게임에 오히려 맞춤한 21세기적 책상에 비하면 단출하기 그지없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책상은 침대 협탁만큼 협소하지만 그는 이 책상 위에서 수백 편의 시를 지었다(사진1). 미국 독자들에게 유머러스한 단편소설로 인기가 많은 유도라 웰티의 책상은 수많은 자료를 펼쳐놓다 보니 정작 글 쓸 공간은 사라지고 없다(사진2). 윌리엄 포크너는 어떤가. 어머니가 준 작은 탁자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사진3). 그는 소설을 쓰다 종종 이 탁자를 밖으로 들고 나가 글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평생 ‘자기만의 방’을 갖고 글쓰기를 열망했던 의 루이자 메이 올컷은 간단한 지지대가 있는 둥근 판자 책상에서 맹렬하게 글을 썼다(사진4). 시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는 응접실의 1인용 소파에 앉아 무릎에 판자를 대고 글을 쓰곤 했다고 한다.
매클라치 교수는 작가들의 집을 소개하며 “이런 집들은 종종 아주 검소하고, 때로는 괴상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작가들이 영화를 누리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이디스 워튼의 집에 깃든 사치스러움이나 코네티컷주에 있는 마크 트웨인의 집이 두드러진다.”
마크 트웨인의 괴상한 집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귀퉁이도 사랑했던 작가들 반대편에 놓인 또 다른 작가를 살펴보자. 로 친숙한 마크 트웨인은 언젠가 자신에 대해 “나는 평범한 미국인이 아니다. 나는 유일무이한 미국인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친숙했다. 그런 가운데 트웨인은 더 이상 유럽의 모범을 따르지 않는 자신만의 글쓰기로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는데, 헤밍웨이는 에 “우리가 가진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트웨인은 미국 코네티컷주의 하트퍼드에 집을 지었다. 그는 아내 올리비아 랭던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이나 대지를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아주 아름다워. 조용히 중얼거리는 매혹적인 ‘시’가 자연의 단단한 요소들로 구현된 모습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매클라치 교수에 따르면 그 집은 “증기선과 뻐꾸기시계 중간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단다. 당시 는 그 집에 대해 “미국 전역 혹은 그 주에서 주거용으로 설계된 건물 가운데 가장 괴상하게 생긴 건물”이라고 했다.
1층은 터키 융단과 푹신한 의자로 채워진 응접실, 식당, 작은 온실이 딸린 도서실, 호화로운 손님방이 있었다. 2층에는 딸들의 방과 내외의 침실, 3층은 대부분 트웨인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트웨인은 자기만의 공간을 상상력을 촉진하거나 긴장을 풀고, 집중하는 물건으로 채웠다. 특히 눈에 띄는 공간은 당구대가 있는 방인데, 매클라치 교수는 한가하게 당구를 치며 플롯을 변형하거나 문단을 옮겼을 트웨인의 모습을 떠올린다(사진5).
그러나 트웨인은 이 호화로운 공간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다. 사업 실패로 파산 상태에 도달한데다 딸의 죽음이란 충격에 압도당한 그는 하트퍼드의 집을 팔아야만 했다. 슬픈 결말이다. 그래서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유머의 은밀한 근원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문학이 시작된 공간
이 책은 작가에 대한 짧은 전기이기도 하고 집주인에 대한 소개이기도 하다. 뜻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기다리던 손님을 반기듯 집 구석구석을 소개해준다. 작가들이 골몰하며 산책하던 집의 뒷길, 참고자료를 꺼내보던 서재, 방해받지 않겠다 말하는 듯한 1인용 소파, 잠을 자던 침대, 단정하거나 혹은 어지럽혀진 책상….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상과 문학이 오묘하게 섞인 이 공간에서 하나의 작품세계가 탄생했다 생각하면 절로 얕은 탄성이 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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