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애플은 ‘파워맥’ 시리즈로 함께했던 그동안의 파트너 모토로라와 결별한 뒤 인텔과 손을 잡고 ‘맥북’ 시리즈를 내놓았다. 맥 운영시스템(OS)만을 지원해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던 기존 맥과 달리, 인텔 중앙처리장치(CPU)를 장착해 윈도로 부팅할 수 있다는 사양을 가진 맥북 시리즈는 비싸기로 악명 높던 맥 시리즈의 기존 노선을 버리고 일반 랩톱과 비슷한 가격으로 출시됐다. 값싸게 구입한 맥북으로 멋스러운 디자인과 맥 OS 특유의 사용성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프로페셔널이지만 동시에 크리에이티브하고 브릴리언트한 신지식인’이 돼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신지식인’으로 생각한 부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맥북을 장만하는 건 어느 순간 유행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집단이 커지면 계급이 생기기 마련이다. 맥북을 가진 자 내부에서도 자연스레 계급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상위 계급을 꿰찬 것은 ‘맥북 프로’- 일반 맥북보다 2배가량 비싼- 를 가진 자들이었다. 반면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일반 맥북을 구입한 이들은 ‘프로페셔널이지만 크리에이티브하고 브릴리언트한 신지식인’ 자리에서 밀려났다. 일반 맥북의 하얀색 외관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팬시함을 연상시켰기에 아무래도 ‘프로페셔널’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것이다. 결국 맥북 화이트는 유행을 타기가 무섭게 도태돼버렸다.
이때 구원자처럼 등장한 것이 블랙 모델이었다. 맥북 화이트와 같은 가격임에도 맥북 프로에 뒤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퍼포먼스를 가졌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애플컴퓨터 역사상 전례에 없던 무광 검정의 색상이었다. 녹음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월셋방에 살던 시절, 굶기를 밥 먹듯 한 형편이었지만 6개월 할부로 구입한 맥북 블랙을 ‘만다리나덕’ 가방에서 꺼낼 때면 급변하던 주위의 시선은 나를 배부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겉모습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불순한 목적으로 구입한 맥북 블랙이었으나 막상 구입하고 나서는 카페에 앉아 허세를 떨 여유조차 없었다. 그 무렵 장기하의 싱글 녹음 작업이 시작됐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 앨범의 성공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장기하와 얼굴들’ 1집 의 녹음 작업이 이어졌다. 이 모든 작업이 맥북 블랙으로 이뤄졌다. 4년하고도 4개월이 흐른 지금, 당시 유행이던 맥북 화이트는 대부분 집구석에 처박힌 채 온전한 컴퓨터 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맥북 블랙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망가지고 느려졌지만, 한 차례의 개수 공사와 업그레이드를 거쳐 현업에 다시 복귀할 만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놀랍게도 맥북 블랙은 이후 다시 출시되지 않고 있다. 내 맥북이 맥 시리즈 사상 유일한 블랙 모델인 것이다. 종종 누군가가 물어본다. “우와, 맥북이 까만 것도 있었네요! 특이하다.” 그렇다. 4년이 넘은 나의 맥북, 수명 짧은 신지식인의 업계에서 여태껏 버젓이 살아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1집 프로듀서·그룹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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