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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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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지옥철에 저임금·취업난…중국도 ‘노오오력’에 지쳤다

인플루언서 양마오웨가 불 지핀 학벌주의 논란… “극한 경쟁 속 이기주의자만 양성” 자성 목소리
등록 2025-03-07 20:38 수정 2025-03-12 16:27
중국의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가 치러진 2017년 6월7일 베이징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의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가 치러진 2017년 6월7일 베이징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머리를 자르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앞에 온 손님 머리 손질이 다 끝나지 않아서 조금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 손님과 미용사 간에 오가는 대화를 듣게 됐다. 중년의 여성 손님은 한눈에 봐도 ‘부티가 자르르’ 흐르는 차림새였다. 그 여성은 미용사에게 이제 막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속된 말로 ‘자랑질’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국제학교를 마친 뒤 영국 대학에 유학 가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아들은 어릴 때부터 예술 방면으로 타고난 재능을 보였고 패션 감각도 남달랐다고 한다. 아이 성향이 다소 보수적인 중국 사회 분위기와 맞지 않는 듯해 어릴 때부터 ‘영어로만’ 수업하는 국제학교에 보냈고 대학도 영국으로 보냈다. 대학원까지 마친 아들은 얼마 전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모인 자신들은 아들이 좀더 선진국인 영국에서 자리잡기를 원했지만 “나가서 살아보니 중국에 훨씬 더 많은 미래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집부리며 아들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집 근처 798 예술구에 (부모의 재력으로) 건축 및 디자인 사무실을 차렸고 지금 한창 인테리어 중인데 “요즘 경기가 최악이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엄살을 떨었다. 입꼬리가 눈에 띄게 올라가며 웃는 모습이 전혀 ‘망할 걱정’은 없는 듯했다.

내 차례가 됐다. 친절한 미소로 배웅한 뒤 내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 단골 미용사는 금세 표정이 싹 바뀌어서 이렇게 말했다. “돈 많은 사람은 뭘 해도 망할 걱정 없어서 좋겠어요. 근데 자기 아들이 뭐 엄청 똑똑해서 영국 유학 간 줄 아나봐요? 그게 다 돈의 힘이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요? 대학 졸업한 친척 애는 지금 취직이 안 돼서 임시로 배달 일이라도 할까 고민한다는데…. 돈 없는 집 애들은 소나 말(牛马)처럼 굴러먹으며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데 그나마 그런 일자리도 구하기 힘드니 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지, 저런 이야기 들으면 진짜 복장 터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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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걱정 없는 엄살꾼

“요즘 올라오는 (취업 관련) 영상들을 보면 10개 중 8개 내용이 죄다 단 한 건도 오퍼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더군요. 베이징대학 석사 출신, 우한대학 박사 출신이라는 등의 사람들이 나와서 취직을 못한다며 블라블라 얘기하다 감정에 복받쳐서 질질 짜기까지 하던데….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 없다고 말하고 싶네요. 00후(2천년 이후 태어난 세대) 세대들은 자신들이 직장 문화나 질서를 새로 정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근데 어떻게 직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죠? (…) 인플루언서(网红·왕훙)가 되는 건 쉬워 보이는지 다들 (이 세계로 들어와) 우리와 경쟁하려고 하네요. 당신들이 모두 인플루언서가 되면 나는 뭘 해야 하는 거지?”

2024년 11월,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8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거느린 스타 인플루언서 ‘양마오웨’(羊毛月)가 “취직이 정말 그렇게 어렵다고?!!”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해당 영상에서 시종일관 조롱하고 비꼬는 듯한 말투와 표정으로 취업이 안 된다고 호소하는 수많은 청년의 가슴을 후벼 파는 발언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실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례없는 취업난을 겪고 있는 중국 청년들에게 그의 동영상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동영상이 나오자마자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수많은 청년은 그의 말은 마치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묻는 것)와 같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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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못 구하냐” 조롱한 틱톡커

양마오웨는 ‘베이징대학 출신’이라는 ‘넘사벽’ 학벌로 더 유명해진 인플루언서다. 그는 자신의 동영상 계정에 본인을 ‘베이징대학 미련한 돼지’(北大笨猪)라고 소개하면서 시시때때로 영상에서 베이징대를 ‘팔아먹었다’. 베이징에 눈이 내렸던 어느 겨울날에는 “베이징대학에 내리는 눈은 어떨까요?”라며 베이징대학 교정의 눈 내리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베이징대학 위로 내리는 눈은 뭔가 더 특별하고 낭만적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8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팔로어를 거느릴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한 가지도 바로 ‘베이징대 출신’이라는 학벌 때문이다. 말 잘하고 잘생긴 외모를 가진 그가 ‘무려’ 중국 최고 학벌인 베이징대학 출신이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추종했겠는가. 게다가 그는 베이징 태생에 초·중·고를 모두 실력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빽’도 있어야 갈 수 있는 베이징 최고 명문학교 출신이었다. 그의 가정환경과 집안 배경도 남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인플루언서 양마오웨. 틱톡 갈무리

중국 인플루언서 양마오웨. 틱톡 갈무리


2019년부터 동영상 플랫폼에 계정을 만들어 활동한 그는 불과 2~3년 만에 중국 최고의 스타 인플루언서로 등극했다. 20초 내외의 동영상 한 편당 약 32만~35만위안(약 6400만~7천만원)의 보수를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 내 각종 유명 기업 광고와 협찬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재벌급’ 인플루언서이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학벌과 수입을 가진 그가 취업하지 못하는 또래 청년들을 무능한 사람 취급하며 조롱하자 곧바로 여론이 들끓어 올랐다. 그의 조롱과 비웃음을 비판하는 수많은 동영상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많은 조회 수와 공감을 얻은 영상 중 하나는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한 한 여성의 ‘노오력 분투기’다.

“나는 베이징 중앙재경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내 구직 조건은 주당 야근 2회를 넘지 않을 것, 지하철 출퇴근 통근 시간이 4시간을 넘지 않을 것, 주 5일 근무할 것, 5대 보험 및 주택 적립금을 제공할 것, 희망 월급은 1만위안(약 200만원)일 것 등 정도랍니다. (…) 요구 조건이 이렇게 낮은데도 지난 2년 동안 세 번 직장을 옮겼지만 어느 한 군데도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회사 경영 상태가 안 좋아서 구조조정을 하거나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거든요. 지금도 나는 베이징에서 생존하기가 아주 힘들어요. 근데 이게 다 내가 노력을 안 해서일까요? 취직이 어렵지 않다고요? 당신은 베이징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아침 출근 시간에 톈퉁위안(天通苑·교통지옥으로 유명한 거주지)을 경험해봤나요?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4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그것도 앉아 가는 게 아니라 서서 가요. 그리고 지하철에서도 노트북을 꺼내서 회사 업무를 준비해야 하고요.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1시나 12시가 돼야 파김치가 돼서 월 3천위안(약 60만원)짜리 낡고 허름한 원룸으로 돌아올 수 있어요. 월세와 식비를 제외하면 한 달에 1천~2천위안(약 20만~40만원)밖에 남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도 버텼는데, 1년도 안 돼서 회사가 월급을 주지 못해 결국 나와야 했어요. (…) 이게 다 내가 노력을 안 해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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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마오웨를 비판하는 중국 보도 갈무리.

양마오웨를 비판하는 중국 보도 갈무리.


오늘 본 통계에 따르면, 2025년 대학 졸업생 수는 1222만 명이라고 하네요. 5년 전에는 800만 명도 안 됐어요. 게다가 올해 석사과정과 박사과정 졸업생의 취업률은 33%에 불과하다고 해요. 학사나 전문대생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나는 산시 지방 소도시 출신이고 부모님은 평범한 노동자예요. 나는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 편안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와도 1년 동안 번 돈이 당신이 광고 하나로 몇 초 만에 번 돈보다도 못 벌었어요. (…) 당신은 나처럼 하루도 직장 생활을 해본 적 없고, 또 나와 같은 배경을 갖고 태어났다면 과연 베이징대에 갈 수 있었을까요? 당신처럼 자원을 독점하고 시대의 혜택을 누린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 자리를 빼앗을까봐 두려운 건가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이익을 나누려고 하는 게 두려운 건가요? 당신이 고기를 먹는 건 괜찮지만 소리를 내면서 쩝쩝거리며 먹지는 말아주세요.”

 

지옥철·저임금에 빛바랜 ‘노오력’

양마오웨의 동영상이 수많은 청년의 분노를 사고 사회 여론을 들끓게 하자, 그는 며칠 뒤 사과 동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이미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환구시보’ 등 대표적인 관영 매체에서도 인플루언서는 공인이기 때문에 발언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감을 생각해야 한다며 그를 비판했다. 사나흘 만에 구독자 수가 100만 명 이상 줄어들었고 광고주들도 줄줄이 그를 손절했다. 급기야 그의 계정은 폐쇄됐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논란과 분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의 동영상이 파장을 몰고 온 뒤, 곧바로 양마오웨의 학력과 관련된 여러 논란과 증언이 잇따랐다. 그가 자신의 계정에 항상 ‘베이징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학부와 대학원 다 베이징대학 출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학부는 다른 대학 출신이고 대학원만 베이징대학에서 졸업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그는 굳이 출신 학부를 밝히는 대신 대학원 학벌을 마치 자신의 모든 학벌인 것처럼 강조했던 것이다.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1학력(출신 대학)을 가장 중시한다. 여기에 더해, 그가 나온 대학은 베이징에서는 명문대에 속하지만 다른 학생들처럼 가오카오(대학입시) 고득점을 맞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예술 및 체육 특기생 자격으로 가산점을 받아 입학했고 중·고등학교 때 성적도 뒤에서 맴돌았다는 동창생들의 증언이 나왔다. 베이징대 대학원 입학도 남들처럼 뼈 빠지게 공부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예술 특기생들이 누리는 각종 혜택과 가산점에 힘입어 좀더 쉽게 입학할 수 있었다는 반박들도 쏟아졌다.

 

경쟁하며 괴물로 변해가는 사람들

결과적으로 양마오웨의 ‘베이징대학 출신’이라는 학벌은 본인이 노력해서 공정하게 획득한 게 아니라 각종 특혜와 혜택으로 부풀려진 학벌이라는 여론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베이징대학 출신이라는 학벌을 내세우며 중국 최고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양마오웨는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자신은 온갖 특혜와 혜택에 힘입어 성공 사다리에 쉽게 올라왔으면서,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공정한 경쟁의 기회마저 갖지 못한 수많은 약자와 “힐링에 속고 스펙에 울고 불안에 떠는” 또래 청년들의 암담한 현실을 비꼬고 조롱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최근 중국에서는 학벌을 중심으로 온갖 경쟁과 차별에 시달리는 한국 이십 대들의 삶을 분석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이 번역 출판됐다. 이 책의 저자인 사회학자 오찬호는 한국의 이십 대 청년을 “힐링에 속고 스펙에 울고 불안에 떠는” 청춘들로 묘사한다. 자기계발서를 ‘힐링’ 삼아 읽고 온갖 ‘스펙’ 경쟁을 벌이지만 결국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괴물이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돼버렸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출간된 지 10년도 더 지난 책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최근 뒤늦게 번역돼 나온 즉시 화제를 모으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한국 이십 대 청년의 모습이 현재 중국 사회 또래 청년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과 함께 최근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선의의 경쟁’도 중국 소셜미디어와 언론 매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 최고의 경제·사회적 엘리트 중산층이 몰려 사는 강남을 무대로 벌어지는 ‘괴물들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곳은 온갖 종류의 괴물들을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 모순의 축소판이다. 어릴 때부터 잔인한 경쟁에 내몰리며 학벌 계급주의 사회에서 최상층부를 차지하기 위해 괴물이 된 어른들과 괴물로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중국인들에게도 현실판 디스토피아로 비치고 있다.

 

극한 경쟁이 낳은 이기주의자들

드라마 ‘선의의 경쟁’을 본 한 중국 누리꾼은 관련 글이 올라온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리고 어떤 사회적 환경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어가느냐다. 중국의 양심이라 불리는 첸리췬 선생님도 중국 교육을 비판하면서 현재의 중국 대학은 자기 이익만을 쫓고 극대화하려는 온갖 ‘세련되고 정교한 이기주의자들’(精致的利己主义者)을 양성하고 있다고 비판하지 않았나. 드라마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우리도 어릴 때부터 온갖 경쟁과 스펙 쌓는 노예로 살다가, 막상 성공하면 다른 사람들을 부려먹는 노예주처럼 변한다.”

중국 문화잡지 ‘신주간’은 2025년 2월28일치 기사에서 오찬호의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드라마 ‘선의의 경쟁’을 함께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찬호는 책에서 한국 사회 이십 대의 모습을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복’이라는 산양에 비유한다. 그들은 집단 전체가 맹렬히 달리다가 절벽에서 함께 떨어져 죽는다) 모두가 왜 뛰는지 목적도 이유도 모르고 무조건 달리다가 절벽에서 함께 떨어져 죽는 모습은 단순히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만이 아니다. 그 모습은 경제 침체와 경쟁 심화가 이어지는 오늘날 세계에 경종을 울리는 모습이다.”

졸지에 실직자가 된 ‘한때’ 인플루언서 양마오웨에게 한국 젊은이들이 즐겨 읽는 자기계발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혹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종류의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줘야 할까. 진정한 힐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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