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만 경계인은 아니다. 나도 만만찮은 경계인이다. 말하자면 나의 가계도는 ‘경계녀+원주민남=경계인 아들’쯤 된다. 어머니는 광주 출신이지만 내가 어려서 먹던 음식은 전라도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6살께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자와 우연히 만나, 아직 쌍발 프로펠러기가 하루에 대여섯 번만 뜨고 내리던 1970년대에 섬으로 살러 왔다. 그러므로 나는 ‘경계인이 낳은 경계인’에 해당한다.
이름도 희한한 태풍 ‘곤파스’가 지나가고 아침 공기가 꽤 서늘해졌다. 밥맛이 좋아지는 이때쯤 되면, 이지니 버터라든가 멸치국수 따위로는 입이 헛헛하다. 고추장아찌를 먹을 시기가 닥친 것이다. 사각거리는 식감의 고추를 베어문다. 딤섬이 터지는 것처럼, 캡사이신의 매콤함을 머금은 간장이 이빨 사이로 터져 들어온다. ‘밥도둑’이라는 진부한 사은유 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는 맛이다.
어머니가 경계인이었음을 고추장아찌에 도전하면서 다시 느꼈다.
인터넷에서 조리법을 찾았다. ‘간장 2컵, 식초 1컵, 물 1컵, 설탕 1컵을 팔팔 5분 끓인다 → 약불에서 10분 끓인다 → 그릇에 고추를 넣고 뜨거운 간장을 붓는다.’
마트에서 한 봉지 1980원짜리 청량고추와 진간장, 식초를 샀다. 간장이 쉽게 배어들도록 이쑤시개로 고추 옆구리에 구멍을 3개씩 내라는 지시도 인터넷에 있었다. 너무 귀찮았다. 방법이 있었다. 조용히 포크를 집어들었다. 포크 날은 정확히 3개였다. 포크로 고추 옆구리에 구멍을 뚫었다. 내가 한 끼에 열 개씩 먹어치우는 고추장아찌를 만들기 위해 어머니도 하염없이 고추 옆구리에 구멍을 내셨을까? 그러나 섬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는 고추 옆구리에 구멍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재료를 준비하고 싱크대에 늘어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어머니, 고추장아찌에 간장이랑 식초, 설탕 넣는 거 맞지예?” “아니 아니, 식초랑 설탕은 넣으면 안 돼. 그거 넣으면 물렁물렁해져서 맛없다~.”
어머니의 김치는 담백한 서울식이었다. 젓갈은 넣지 않았다. 반면 섬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극도로 비릿한 젓갈류를 좋아하셨다. 자리젓이 밥상에 오르면 어머니는 코를 쥐어쌌다. 반면 어머니가 청국장을 끓이시면 아버지는 조용히 밥상을 뜨셨다.
어머니는 고추장아찌에서도 담백함을 추구하셨던 거다. 어머니의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절대 설탕과 식초를 넣지 말 것, 둘째 그저 진간장을 팔팔 끓여 고추에 부을 것, 셋째 고추는 마른 행주로 닦아 물기를 없앨 것. “물기 있으면 곰팡이 슨다~.” 마른 행주를 들고 고추를 하나하나 닦았다. 어머니가 고추 옆구리에 구멍을 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이렇게 하염없이 고추를 닦았다는 것은 이제 알겠다. 단순해 보이는 고추장아찌는 의외로 손품을 요구했다.(다음편에 계속)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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