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의 을 보면서 문득 궁금했다. ‘저 재기발랄함으로 이탈리아인이 아니라 한국인을 묘사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티노(라틴계 남자),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인이 다혈질이라는 건 전혀 근거 없진 않은 모양이다. 같은 백인이지만 미국인 타란티노가 묘사한 것을 보면 말이다.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 침투한 미군 브래드 피트는 마지막 순간 작전이 벌어질 극장에 침투한다. 그와 그의 부하 3명은 이탈리아 영화 기사로 위장한다. 누군가 말을 걸면 어깨를 으쓱 올리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상태에서 손가락을 오므려 방정맞게 흔든다. 답은 두 마디다. 나치 장교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도 “맘마미야~”,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말하면 “그라치에~”(감사합니다), “영화 공부는 어디서 했냐”고 물어도 “맘마미야~”, “음식이 참 맛있다”고 말하면 “그라치에~”라고 답하는 식이다. 미국인의 눈에도 손을 오므려 흔드는 이탈리안 제스처가 퍽이나 웃겼던 게다. 하긴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배운 요리사 박찬일은 이탈리아에서는 말 못하는 아기가 젖을 달라고 할 때도 앙증맞은 두 손을 오므려 흔든다고 ‘구라’를 칠 정도니 ‘이탈리안 제스처’의 이미지가 세긴 세다.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항상 비판받는다. ‘단면’만 부각시킨다는 거다. ‘냄새나는 외국인 노동자’나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여성’ 같은 식의 스테레오타입은 위험하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위험함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스테레오타입에도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다. 내가 타란티노였다면 영화에 한 장면을 추가했을 것이다. 안주로 나온 카나페를 먹고서도 두 손을 흔들며 “알 덴테~”,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면서도 두 손을 흔들고 “알 덴테~”.
악동 타란티노를 핑계 삼아 이탈리아인을 모욕하지 말라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이탈리아=알 덴테’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처음 취재하러 갔을 때 ‘알 덴테’라는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처음 기자가 되어 ‘야마’라는 단어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충 ‘기사의 주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정체불명의 은어다. 영어로 번역하면 ‘리드’(Lead)나 ‘앵글 오브 더 스토리’(Angle of the Story)쯤 될 것 같지만 정작 번역하기엔 마땅찮은 그 말.
그렇다, 알 덴테. 이탈리아어로는 치아를 뜻하는 모양이다. 요리에서는 ‘씹히는 식감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쯤 파스타를 뒤적거리며 동석한 친구와 알 덴테의 상태에 대해 논쟁해봤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에 ‘알 덴테’로 익히려면 면을 7분만 삶아야 한단다. 심호흡을 하고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를 켰다. 타란티노라면 ‘파스타를 좋아하는 한국인’을 스테레오타입화하면서 ‘알 덴테로 면이 익었는지 논쟁을 벌이는 친구’쯤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편에 계속)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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