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되면 후계동 ‘정희네’가 떠오르고 여름 되면 삼 남매가 퇴근하고 걷던 산포시 논길이 떠오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속 어떤 장면들이 내 기억처럼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그 드라마의 줄거리를 묻는다면 “후계동 사람들 이야기” 혹은 “경기도 산포시에 사는 삼 남매 이야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만약 박동훈(이선균 분)이 어떤 캐릭터였는지 염미정(김지원 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다면 내가 잘 아는 사람처럼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박해영 작가는 그런 드라마를 쓴다. ‘해방’ ‘추앙’이란 말로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흔든다. 내성적이고 의욕이 없는, 내가 숨기고 싶은 일면을 정면에 드러낸 캐릭터를 만든다. “교육원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이 ‘어떻게 쓰느냐’고 물어봐요. 그럼 제가 반문하죠. 재미있었지? 재미있었대요. ‘네가 그게 재미있다고 느끼는 건 그 요소가 네 안에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네 속에 있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야.’ 절대 특별한 게 아니라고 얘기해요.” 그의 말에 공감하지만 이걸로는 해소되지 않았다. 어떻게 쓰느냐고, 3월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에서 박해영 작가를 붙잡고 물었다.
―<나의 해방일지>의 단초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시작한 이야기였나요.“<나의 아저씨>를 끝내고 다음엔 뭐 할까, 그 생각을 몇 개월 해요. 처음부터 목표나 골조를 정확하게 잡고 시작하진 않습니다. 바라는 정서 정도만 있었어요. 가벼웠으면 좋겠다, 해맑았으면 좋겠다, 깔깔거렸으면 좋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경기도민 얘기를 해야겠다, 밭일도 하면 좋겠고 땀을 흘리면 좋겠다 싶었어요. 왜 젊은이들 얘기를 도시에서만 할까. 우리가 <섹스 앤 더 시티> 세대잖아요. 30대가 되면 아무렇지 않게 다들 <섹스 앤 더 시티>를 찍을 줄 알았는데 집도 없고 시티에 살지도 않고. 출퇴근하면 아프고. 내 인생 내가 주도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게 실패 같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서사라는 건 기본적으로 어떤 설정이 필요해요. 누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문제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 음모인지 배신인지. 이번에는 아무 설정 없이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저부터가 그런 어려움이 없는데도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누군가에게 배신당한 것도 아니고 빚더미에 앉은 것도 아닌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보통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 나와 닮은 사람이고 실제의 삶이지만, 이런 주인공으로 어떻게 16회작을 돌파해나갈 생각이었나요.“제가 드라마를 볼 때 서사에 매료돼서 보지 않거든요. 그보다 인물에 매료돼 보는 편이에요. 시청자 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 얘기가 어디로 가고 쟤가 어떻게 되는지보다 저 사람을 지켜보는 재미. ‘그렇지, 저럴 땐 저렇지. 저런 표정이 우리한테도 다 있지’ 하면서 인물 보는 재미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물들을 더 진짜 같게 그리는 데 치중한 게 아닐까 싶어요.”
―진짜 같은 인물을 그리기 위해 <나의 해방일지>에는 어떤 취재가 필요했나요.“49년 경기도에 살았던 경기도민으로서 그 생활을 잘 알고 있었고요. 초등학생 때 집 분위기가 드라마 속 구도와 비슷했어요. 집 앞에 바로 아버지 공장이 있어서 삼시 세끼 집에서 밥을 드시고 일하셨어요. 염미정, 염기정(이엘 분), 염창희(이민기 분), 구씨(손석구 분)의 기본 속성은 다 제 안에 있는 속성 하나를 부여해준 것이고요. 거기에 저와 다른 직업군을 부여해서 저와 다른 인간이 되게 하죠. 글을 쓸 때 직업군 외에 자료 조사하는 게 거의 없어요. 창희의 경우 편의점 관련해 자문해주시는 분을 쫓아다녔어요. 의외로 본사 직원과 점주 사이가 돈독하고 동지애가 있더라고요. ‘너 결혼하면 축의금 50만원 준다’는 대사도 그때 들은 얘기였어요. 창희는 직업 얘기가 있어서 편의점 얘기를 충분히 했는데 기정은 관계가 주된 인물이어서 리서치 회사의 재미있는 부분을 제대로 못 쓴 건 아쉬움이 있어요.”
<나의 해방일지>가 끝나고 박해영 작가는 “썼다가 엎고 생각나는 대로 끼적였다 버렸다 하며”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보는 눈이 없으면 딴짓하는 편”이라 동네 카페 서너 군데를 돈다고 했다. “아침 9시 이전에 나가서 밤 10시까지 앉아 있다 들어오려고 해요. 진짜 일해야 하는 때가 오면 스터디카페에 종일 앉아 있어요. 사람이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뭐라도 하거든요.”
<나의 해방일지> 속 미정이 퇴근 뒤 카페에 앉아 일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그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 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예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척.” 지금의 처지를 견디게 하는 상상, 누구나 해봄 직한 상상. 카페에서 글을 쓰며 떠올린 것이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땐 제가 아마 염미정이었을 거예요.”
“마음에 걸리는 게 없으면 뭘 죽여도 문제없어. 마음에 걸리면 벌레만 죽여도 탈 나.” -<나의 아저씨>―<나의 해방일지>의 대사 중 특히 미정의 말이 제 마음 밑바닥 감정을 마주하게 하더라고요. 작가님 역시 자기감정을 관찰하고 파고드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어요.“가만히 보니까 제 감정이 하루에 50번 넘게 바뀌는 것 같더라고요. 지루했다, 좋았다, 이랬다저랬다. 그중에 크게 걸리는 감정을 빨리 캐치해요. 나쁜 감정이 올라왔을 때 어느 순간부터 그 감정이 올라왔는지 생각해요. 한번은 작업실에 가려고 흥얼거리면서 집에서 나왔는데 공원을 지나고 뒤돌아보는데 공원 중간쯤부터 감정이 바뀌었더라고요. 왜 기분이 안 좋아졌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화를 받았어. 상대방이 좋다고 한 얘기였는데 난 불편해졌네. 아, 시기했구나. (웃음) 갑자기 좋아졌을 때도 어느 지점에서 좋아졌는지 찾아보고요. 이렇게 감정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어떻게 대사나 이야기로 발전하나요.“누구랑 싸울 때 말꼬리를 잡고 가면 대화가 겉돌잖아요. 네가 잘못했어, 아니야 네가 잘못했지. 보통의 말싸움은 이런 말의 반복이고 얘기가 지루해져요. 상대가 저 말을 왜 하는지, 감정의 베이스가 뭔지 빨리 캐치해야 하잖아요. 대본을 쓸 때 그렇게 하려고 해요. 한 줄 써놓고 이 말이 왜 나왔지? 아, 알아달라는 얘기구나. 그럼 상대방이 그걸 캐치하고 받아치든가, 두 번 더 가서 받아치든가 해야 하죠. 한줄 한줄 ‘이 말이 왜 나왔지’ 계속 봐요. 그냥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사의 골조는 빤하고 하고자 하는 말의 핵도 빤해요. 자기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한 페이지 분량으로 중언부언할 얘기도 사실 한 줄로 딱 끝내버릴 수 있거든요. 웬만하면 인물들이 그런 대사를 하게 하자는 주의예요. 그래야 보는 사람도 쾌감이 있고 보면서 딴생각하지 않게 되고요. 염미정과 구씨는 딱 골조만 이야기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 말맛이 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인물들은 수다를 떨게 하는 거죠.”
“나는 네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 보여서 좋아. 그래서 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귀해.” -<나의 해방일지>―극 속에서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드는 여러 에피소드는 어떻게 정리해나가나요.“한 작가님과 대화하면서 생각하게 됐는데, 그 작가님은 매회를 중요한 사건으로 끊는다더라고요. 1회 엔딩, 주인공 빠져나간다. 2회 엔딩, 교도소에 간다. 이런 식으로요. 반면에 저는 매회를 감정으로 끊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간다. 요동친다. 참는다. 그다음에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만져보는 식이죠. ‘추앙해요’의 경우 대사가 먼저였는지 관계가 먼저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아요. 아마도 이 지점에서 우리가 출렁여야 한다. 2회 엔딩은 감정적으로 모두 흔들려야 한다, 라고 잡아놨으면 ‘추앙’이 떠올랐을 때 ‘이건 2회다’ 이렇게 가는 식으로요.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도 사건보다는 어떤 감정이 일어나야 할까, 이런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해영 작가는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회차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을 손으로 그려 보였다. 감정의 궤적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의 아저씨> 김원석 감독이 그의 대본을 보고 ‘악보 같다’고 표현했던 것도 이때문이 아닐까.
―감정을 건드려서일까요. 드라마가 끝나도 캐릭터가 남아요. ‘이만하면 됐다’며 늘 안전제일주의로 살아온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 분)은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좋은 인간으로 기억에 남아요. 박동훈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나요.“너무 오래전 일이라… (잠시 생각) 박동훈은 ‘요란하지 않아야겠다. 그런데 근원에 닿아 있다… 쓸쓸하겠다’ 정도에서 시작했어요.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대사로 사건이 전개되잖아요. 박동훈은 말이 별로 없어 사건을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런데 주인공이고 매력적이어야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웃음) 박동훈은 어떤 상황에서 마크하는 사람이지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조용히 티 안 나게 무너질 만한 것을 틀어막고 있는 사람. 마크맨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만들어나갔어요. 처음부터 분명한 의도나 목표를 정하고 가면 극이 억지가 돼요. 인물에 집중해서 남쪽으로 가자, 정도의 방향성을 가지고 가다보면 ‘아, 이런 인물이 되겠구나. 이런 인간을 그리고 싶었구나’ 정확해지고 그걸 끝까지 견지해나가는 거죠.”
―서사 없이 나아가는 이야기, 말 없는 주인공. 작가님은 왜 어려운 길을 택하는 건가요.(웃음)“제가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도 어떤 서사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보는 게 아니라 그 배우가 좋아서, 인물이 좋아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적인 인간, ‘저거 진짜다’ 싶은 표정과 말투를 보여주는 인물을 그리고 싶어요. 가끔 기계적인 캐릭터를 보게 될 때, 아마 대본이 기계적으로 흘렀기 때문에 연기도 대사도 기계적으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왜 그렇게 됐을까? 서사를 먼저 잡고 시작해서, 정해진 서사에 인간을 돌려버렸기 때문에 기계적인 얘기가 나온 게 아닐까. 인간을 먼저 잡고 쓰면 그 인간이 갈 수 있는 만큼만 나아가기 때문에 기계적인 이야기로는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죠. 최근 <더 웨일>을 보고도 느꼈는데 영화나 드라마는 배우의 예술이더라고요. 결국 배우가 상황에 얼마나 몰입하는지, 어떤 인간을 제대로 보여주는지가 중요한데 작가는 그 베이스가 돼줘야 하잖아요. 배우가 꽃을 피운다. 그 꽃의 자양분을 대자. 저에게는 이 생각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 것 같아요.”
박해영 작가는 SBS 보조작가로 시작해 청춘 시트콤 <행진> <골뱅이> <달려라 울엄마> <올드미스 다이어리> <청담동 살아요>까지 오랫동안 시트콤을 썼다. 시작할 때 애먹었다. “남이 재미있을 만한 걸 가늠하고 웃을 만한 걸 찾아 써야 하는데” 그게 재미없었다. “메인 작가님을 찾아가 말씀드렸어요. 사람들이 웃어도 나는 재미가 없다고요. 그때 작가님이 해주신 말씀이 ‘글은 억지로 쓰지 못한다. 그러니까 네가 재미있는 걸 끝까지 파라. 그러다보면 네 것을 재미있어하는 감독이 나타날 수 있다. 그 감독 만나면 그때부터 작가 인생 풀리는 거다.’ 그렇게 계속할 수 있게 판을 만들어줬어요. 감사한 조언이었지요. 만약 ‘극은 이런 거야, 이렇게 써야 하는 거야, 저렇게 하면 재미있대’ 이렇게 말씀했으면 오래 못 갔을 것 같아요.”
―그렇게 10년을 파셨어요. 시트콤을 썼던 10년은 무엇을 훈련한 시간이었나요.“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만약 시트콤을 했던 시간이 없었다면 글이 부드럽지 않았을 거예요. ‘인간이 이럴 때 웃기지’라는 걸 배울 기회였어요. 10년 동안 내가 매일 쓴 걸 배우들의 연기로 다시 보면서 ‘이거 안 사는구나. 이렇게 쓰면 안 되는구나’ 훈련했고요. 10년 동안 내가 쓴 걸 누군가 연기하는 걸 본 경험은 10년 동안 내리 자기 글만 쓴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일 거예요.”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고 외쳤던 <또! 오해영>부터 “어디에 갇힌 건진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나의 해방일지>까지. 일종의 행복에 관한 탐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작가님 개인의 화두도 행복인가요.“행복까지도 안 가요. 평안. 평화. 안온. 내가 지금 뭘 몰라서, 혹은 내가 지금 뭘 못 놔서 불행한 거야. 그러니까 깨쳐야 하는 거야, 득도해야 된다. 글 쓰는 게 일종의 개인적 구도 작업 같아요. <또! 오해영>을 쓸 때는 제가 40대 중반이었어요. 인생이 되게 재미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태어나면 엄청 쉬운 여자로 살고 싶다. 막 주고 다 하고 오늘 또 사랑하자. 그런 생각으로 빙의해서 쓴 게 <또! 오해영>이죠.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이지은 분)과 박동훈의 경우 나와 거리가 있는 처지라 약간은 떨어져서 봤고 <나의 해방일지>는 아, 여전히 행복하지 않네? (웃음)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옛날에 썼던 대사가 또 나와요! (‘사랑으로 폭발해버려’ ‘해갈’ 같은 표현일까요.) 그게 해결이 안 된 거예요. 해갈도 안 됐고 폭발도 못해봤고 그러니까 계속 나오죠. 이게 제 로망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짓는 일은 작가님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예전에 <청담동 살아요> 끝나고 나서 쫑파티 자리에서 후배 작가가 ‘어떤 동력으로 글을 쓰냐’고 비슷한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나요. 쓰다보면 나도 몰랐던 것이 내 인생의 문제였구나 훅 알게 되고 ‘이건 왜 이렇지?’ 의문이 생기는 아이템을 가지고 풀다보면 ‘아, 이래서 그랬구나’ 알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주 1회였기 때문에 매주 쓰면서 정리되는 그런 것이 있었어요. 글쓰기가 생계는 물론이고 저에게도 도움이 돼야 하잖아요. 계속 나 언제 해갈되지. 언제 사랑으로 폭발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풀어가는 게 쓰는 일 아닐까 싶어요.”
글 김수영 <씨네21> 기자, 사진 오계옥 <씨네21> 기자일과 중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컴퓨터 게임이요. 윈도 컴퓨터에 내장된 카드게임. 요즘 컴퓨터엔 없어서 다운받아서 해요. 글 쓰려면 힘드니까 회피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은 녹초가 돼 집에 들어가서도 할 때가 있어요. 정말 숨도 안 쉬고 해요. 왜 그러는 걸까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마음을 뒤흔든 그 장면은 어떻게 떠올렸는지, 그 대사는 어떻게 나왔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답이 마땅치 않은 질문일 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박해영 작가는 말을 멈추고 “한번 생각해볼게요. 왜 그러는지” “그것도 한번 생각해볼게요”라고 답했다. 그가 그려낸 감정과 대사가 어쩌면 저 말에서 비롯됐을지 모르겠다. 내 마음을 건드린 것,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것을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일. 그래서 피곤하다고, 지겹다고 매일 똑같이 불만을 털어놓는 내 마음에 실은 “우리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쨍하고 햇볕 난 것처럼 구겨진 것 하나 없이” 이런 바람이 있다는 걸 간파해내는 게 아닐까. 그는 글쓰기가 일종의 구도 작업 같다고 말했다. ‘나 어디로 가고 싶은가. 뭐가 보고 싶은가.’ 이야기도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가 이번에는 어디로 향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여전히 해갈되지 않았다’는 그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나, 좀 좋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하니 말이다.
<나의 해방일지>(JTBC, 2022년)
<나의 아저씨>(tvN, 2018년)
<또! 오해영>(tvN, 2016년)
<청담동 살아요>(JTBC, 2011~2012년)
<90일, 사랑할 시간>(MBC, 2006년)
<올드미스 다이어리>(KBS, 2004~2006년)
<달려라 울엄마>(KBS, 2003~2004년)
<골뱅이>(SBS, 2000~2001년)
<행진>(SBS, 1999~2000년)
<LA 아리랑>(SBS,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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