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에 환장한다. ‘여름에는 회를 피하라’는 음식계의 금언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바다에서 나는 모든 걸 좋아하며, 그것이 날로 먹는 것이라면 더 좋다. ‘날로 먹기’라는 비유법도 좋아하고 실제로 그 비유법대로 하는 것도 좋아한다. 날로 먹는 건 다 좋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날로 먹는 게 얼마나 좋았으면 ‘날로 먹는다’는 표현이 있겠는가.
나는 얼마나 많이 날로 먹어봤을까. 광어, 농어, 숭어, 쇠고기(육회), 간(돼지), 자리돔, 오징어, 가리비, 해삼, 멍게, 개불, 갈치, 고등어, 우럭. 고작 14 종류다. 말고기 육회 간판을 보고 고개를 돌리고, 지난해 겨울 횡성 한우를 먹으러 들른 강원도 고깃집에서 ‘사슴 육회’를 메뉴에서 보고 가벼운 욕지기를 느꼈으니, 사실 날로 먹기의 달인이라고 하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살아 있는 사슴의 목에 빨대를 꽂는 사나이들에 비하면.
나는 빨대 대신 칼을 잡아보기로 했다. 직접 생선을 고르고 돈을 내며 머리를 따고 피를 뺀 뒤 껍질을 분리하고 살을 발라내는 작업에 도전하고 싶었다. 생선이든 돼지고기든 쇠고기든, 고기를 먹는 것은 시체를 먹는 일이다. 크기가 다를 뿐 생명을 죽여 피를 뽑고 살을 발라내는 작업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2008년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 피 냄새를 맡으며 그걸 배웠다. 시체를 먹으면 생명을 얻는다. 냄새는 비릿했고, 약간 온기가 있었다. 그 냄새를 마시면서 ‘새김꾼’(쇠고기를 해체하는 전문가)의 칼이 등심에서 채끝을 거쳐 안심과 우둔을 썰어냈다가 우둔과 설도, 사태를 종횡무진 떼어내는 동선을 쳐다봤다. 단 몇mm의 실수로 비싼 부위를 날릴 위험이 있었다.(생선이라고 다를 건 없지 않겠냐고!)
‘사시미’칼을 사시미칼이 등장하는 조폭 영화만큼 주변에서 쉽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집 근처 백화점·대형마트에서는 회칼을 팔지 않았다. 일본 ‘이케다데코쇼’사가 만든 ‘백로’(白鷺) 240mm 회칼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겨우 찾았다. 날렵한 모양은 ‘썬다’는 느낌보다 ‘찌른다’는 강렬한 살기를 줬다. 실제로 회를 뜰 때는 칼 옆날로 정직하게 썰기보다 칼끝을 많이 사용한다. 검객의 칼이다. 사시미(さし-み)는 한자로 ‘자신’(刺身)이다. ‘몸’(身)을 ‘찌른다’(刺)는 뜻이다. 그러니 조폭 영화에 사시미칼이 나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2만2천원을 결제한 뒤 두근거리며 칼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내 두 손을 이용해 직접 날로 먹어보고 싶었다. 요리를 해 먹으면서 덤으로 원고지 7매 분량의 활자를 얻는 이 칼럼처럼, 진짜 날로 먹기에 도전하고 싶었다.(다음편에 계속)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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