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을 찾아갔다. 지난 4월14일, 뉴스에선 “겨울 코트를 다시 꺼내 입었다”는 이들의 육성이 전해지던 날이다. 경기도 안성, 키 작은 꽃들도 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노(老) 시인이 대문을 직접 열었다. 인사를 뺀 첫 마디가 낮게 건네졌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있잖아요. 곰곰이 보니 따뜻하고 조용하고 꽃 피고 나물들 돋아나는 때로만 봄을 생각했지, 봄의 전부를 담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 봄이라는 게 방정도 떨다 거칠게 꽃샘도 부리는, 이런 모든 게 봄이지요. 봄을 너무 좁게 획정한 것 아닌가 싶어요. 봄의 크기를 좀 키워서 봄의 노래를 다시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봄이되 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봄답지 않던 때로 봄은 온전해진다. 고은 시인이 를 최근 완간했다. 불사춘의 봄을 살던 민중의 초상이다. ‘만인의 족보’를 시로 옮기며, 그는 이미 반도의 광대한 봄을 노래했다.
“딱한 세월이여/ 봄이 와도 피어날 진달래 없었습니다/ 사람 가난이/ 어찌 할미산 뒷동산 가난 아니겠습니까/ 어쩌다가 한두 뿌리 남아서/ 그것이라도 진달래라고 피어나서/… / 그 둘레 돌멩이 주워다 울타리 치고 나서/ 한동안 집도 일도 다 잊고 거기 앉아 있다가/ 오마나! 여태 내가 여기 있었네 어쩌나 어쩌나”(‘진달래’, 1권)
모두 30권에 4001편의 시를 쟁인 를 향한 상찬은 차고 넘친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하스의 평이 대표적이다. “오늘날의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의 하나다. 시들은 감칠맛 나고, 사람들 삶의 세목으로 충만하다.” 하스는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말을 되뇌기도 했다. “격정의 시대에 지리적으로 얄궂은 땅에서 태어난 시인에게 고난 있을지어다.”
실제 는 최초 구상 30년 만의, 1~3권을 출간한 지 24년 만의 완결이다. 하지만 시인이 일찌감치 제 시 인생을 “표류와 표착의 연속”이라 했듯 ‘완결’보단 ‘표착’이 어울린다. 표착은 또 다른 표류를 예정한다.
-오랜 길마를 벗었다고도 했는데 완간의 소회가 궁금합니다.=25년 동안 (만을 위한) 고도의 시적 긴장을 유지한 건 아니어서…, 일탈도 있었고 다른 작업도 했고 내 키(173cm)만큼의 작품이 쌓였죠. 그런데 마치고 나니 내 목에 걸린지도 몰랐던 사슬, 아 그동안 내가 묶여 있었구나 느낌이 들어요. 이제 그걸 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뭇가지로, 훨훨, 앉아 있겠다 생각하지요.
1980년, 시인의 나이 마흔일곱에 의 얼개를 구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경기 성남 육군교도소 특별사동 독방에 수감됐다. 이튿날 5월18일 학살이 터졌다.
-이번 신간 27~30권에선 시선의 상당 부분이 광주를 향합니다. ‘광주’에서 기획되고 갈무리되는 셈입니다.=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 쓰던 방에 있었어요. 을 읽다 새벽 4시 아침 커피 한잔하고 서대문으로 옮겨져 사형을 당하고서 비어 있던. 창도 없었고 40촉짜리 전등도 자주 꺼져요. 관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어. 외할머니, 할아버지처럼 과거의 얼굴 하나하나가 현재화됐지요. 그들에게 가기도 하고, 그들이 오기도 하고. 살게 된다면 꼭 한번 모두를 시로 그려야겠다 했습니다.
시인은 “이런 구상만이 새까만 독방에서 존재를 유지해주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는 그 절박으로 민초들을 하나하나 호명한 셈이다. 불사춘의 절망과 그를 버티는 넉살이 여백을 채웠다.
“평양 기생 아미녀가 이름과 몸 떨쳤지요/ 사나이들 뼈깨나 녹았지요/ …/ 수원기생조합 기생 50명이/ 기미년 3월29일/ 자혜병원으로 정기검진 받으러 가던 중/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 외쳤지요/ …/ 아름다운 김향화 가로되/ 아무리 곤고할지라도/ 조선 사람 불효자식한테는 술 따라도/ 왜놈에게는 술 주지 말고/ 권주가 부르지 말아라/ 언니 언니 걱정 말아요/ 우리도 춘삼월 독립군이어요”(‘기생독립단’, 2권)
머슴 대길이, 봉태 등 일제강점기 고향지기를 만나고 1950년대 동족상잔의 대지를 달그림자처럼 지난다. 시인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1970년대 ‘동지’들도 부른다. 생명·시공·귀천의 유한성을 거부한다. 원효·히틀러·청량리 588이 호명되고, 박정희·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현직 대통령도 ‘시제’가 되고 만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름을 비로소 불러준 것인데요.=평등 개념 따위를 생각한 건 아니에요. 저 높이 새의 눈으로 지상을 볼 때 을지문덕과 장삼이사들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내가 주목한 건 이 목숨과 이 목숨의 무차별성입니다.
새로 낸 책들 맨앞에는 권두언이 새겨져 있다. “만인만이 만인이 아닙니다. 만물도 만인입니다.”(1권) 시인의 말도 있다. “선악과 미추의 차별은 지배논리를 털어낼 때에만 정당하다.”(16권)
책을 관통하는 두 명제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올해 분주히 회고하려는 일제강점 100년, 6·25 60주년, 4·19 50주년, 전태일 분신 40주년, 5·18 30주년,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까지도 일찌감치 에 ‘시비’로 새긴 격이다.
=계획은 아니고 당연한 귀착이지요. 1980년 감옥에 있을 때 “광주에서 사람 죽어가는데 너 같은 거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얘길 들으면서, 내 목숨에 대한 위기감뿐 아니라 광주의 위기를 느꼈어요. 그들의 삶은 완료된 게 아니라 중단된 거 아닙니까. 시 속에서 연장시켜주고 싶었어요. 5·18 때 죽은 이가 언젠가 대통령이 되는 상상력(‘2030년 5월’, 30권)도 아직도 그들이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심정 같은 거지요.
하지만 의 진짜 본질은 끝이 없다는 겁니다. 한 사람의 어떤 시공에서의 그림만 그려졌지 이후는 안 그려졌잖아요. 1960~70년대 민주화에 헌신했다 등 돌릴 수도 있는데, 이런 이후는 없거든요. 그래서 는 끝날 수가 없어요. 나 스스로 31권을 쓸 작자가 될 수도 있는 거지요.
-실제 이번에 의 특정 대목을 고치진 않았는지요. 본래 오래전 작품도 고쳐 출간하는 것으로 유명하신데.
=고칠까 하다 평가와 관련된 부분은 그대로 두자 했어요.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는 아니니까. 문학성, 말의 묘미, 어휘 같은 수사만 다듬었어요.
다만 예전과 지금이 너무 다른 경우, 옛날 시는 분명히 불완전하잖아요. 이런 부분을 그대로 놔둘 생각은 아닌 거죠. 내가 직접 쓸진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서도 는 끝이 없습니다.
“슬픔 있는 곳/ 아픔 있는 곳/ 그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나왔다//… //그는 혼자 물러서서 그늘이 되었다/ …/ 그대 대한민국의 정치를 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속으로 격렬한/ 누가 몰라주는 진실 때문에”(‘노무현’ 일부, 13권)
“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발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이명박’ 일부, 15권)
-실명을 담았으니 비판과 항의, 또는 감사 인사도 있었겠습니다.
=감사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비판 같은 건 다 받아들여야지.
시인은 ‘피드백’과 관련한 뒷얘기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충이 상당했느냐”는 질문에 거듭 “받아들여야지”라고만 말했다. 현 정권에 대해 물었다. “지금은 정치적 묵상 기간”이라며 그는 또 주저했다. “발바닥이 거기 가 있을 때 입이 열린다고 생각하는데 난 지금 집에 있다”며 “발언 하나로 책임을 다한다는 듯한 자세로 있기 싫다”고 말했다.
거듭 작가회의에 대한 준법서약서 요구 등 근래 현안에 대한 ‘문단 어른’의 생각을 물었다. 시인은 헛웃음을 던졌다. “아이들 장난하는 것 같아서 뭘 말하기도 그렇습니다. 어리석고, 잔꾀 내는 어린애들 짓거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냥 한번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거기다 대고 뭐라 말하기가 참…. 개미들이 발등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요. 허허.”
그가 처음부터 사회참여적 작가였던 건 아니다. 알다시피 1951년 출가했다. 행각승으로 방랑하다 1958년부터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62년 환속한다. “늘 죽음만 생각하”던 때였다. 1970년 정릉 계곡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4·19는 시인께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난 4월 혁명 당시 직무유기자입니다. 정치현실에 관여하는 건 체질에 안 맞아요. 그러다 나중에 4·19가 얼마나 거대한 가치를 갖는지 알게 된 거예요. 태풍처럼 왔지요. 그러곤 4·19 묘지에서 살았어요. 묘지에서 아이스케키 서른 개, 마흔 개를 먹어도 열불이 안 가라앉을 정도였으니까요. 난 사실 1960년대까지 예술지상주의였어요. ‘허무주의의 맹장’이란 공격도 받았는데 어느날 내가 전혀 감당 못하게 돌아선 거지요.
-직접적 계기가 뭡니까.
=전태일이었죠. 늘 죽음을 달고 다녀야 하루하루가 유지됐던 땐데, 어느 날 서울 무교동 낙짓집에서 술을 마시고 통금에 걸려 탁자 위에 뻗어 자는데 떨어진 거야. 그러다 바닥에 놓인 신문에서 전태일을 봤죠. 노동자 같은 걸 생각도 안 해보다 ‘죽음’이 날 먼저 찌른 건데, 비로소 노동자의 현실, 사회까지 신기루처럼 온 거죠. 그의 막강한 힘에 의해 여러 지식인이 눈을 떴어요.
너무 오래된 ‘전설’인지도 모르겠다. 잘 알지 못하고 과거에 무관심한 세대는 무장 는다. 특히 젊은이에겐, ‘고은’조차 노벨문학상 후보로 회자될 뿐 시인 또는 같은 작품으로 잘 거명되지 않는 눈치다.
가 독자와 어떻게 만났으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시인은 되레 딴청이다.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녜요. 골짜기 바람이 책장을 넘기든 말든, 난 그저 유령일 뿐이죠.”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서운하지는 않은지요.
=아냐, 그간 너무 오랫동안 시를 많이 읽었어요. 문학을 주름잡아왔어. 지금쯤 한번 죽어줬으면 좋겠어. 묻혀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사람들이 또 갈망할 때가 옵니다. 그때 백골이 나와 사랑을 노래하고 서정을 노래했으면 좋겠어. 지금 보면, 시적 언어도 전부 상품의 도구로 쓰이고, 그렇게 다 빨리고 정작 시는 해골 된 거잖아요. 이렇게 더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통찰인지, 가탈인지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다. 결국 ‘흔한’ 노벨문학상 얘길 꺼낸다. 수상자 발표 때마다 기자들이 세간의 관심을 짊어지고 안성으로 달려간다. 시인은 “(부담이 되어) 견디기 어려운 질문이니 없던 걸로 하자”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면 문학이, 시가 무엇인지 말씀하시게 될 텐데 미리 좀 엿들을 수 없을까요.=(머뭇거리다) 글쎄, 이제 좀 고민해봐야지요. 명사들의 정의를 따르고 싶진 않고, 문학이 정의되기 이전의 문학부터 살펴야겠지요. 그보다도 활자 가득한 종이가 아닌, 백지가 많이 있어야 돼요. 작가는, 시는 백지가 많아야죠.
시인은 잠시 초점을 흐린 채 “백지야말로 최고의 유혹이야, 미쳐요”라며 웃었다. 그리고 함께 서재를 둘러보았다. 묵향이 봄꽃보다 진했다. 30년 ‘나그네’로 표류하다 잠시 숨 고르는 곳이다. 에 등장한 5600여 명의 나그네도 그렇게 이 계절을 맞겠다.
“게다가 떠도는 나그네 들어오니 꽃 피듯 반갑네/… /그 나그네 고단한 김에도 잠도 없이/ 신새벽까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신명나다가/… / 문 열고 나가 참았던 소피 으스스 시원하기도 하네/ 한술 더 떠서 어찌 그리 하늘 가득히 별의 가쁨 아우성치나”(‘나그네’ 일부,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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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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