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새책] 〈이반 일리히의 유언〉외

등록 2010-03-04 14:37 수정 2020-05-03 04:26
〈이반 일리히의 유언〉

〈이반 일리히의 유언〉

〈이반 일리히의 유언〉
데이비드 케일리 대담·엮음, 이한·서범석 옮김, 박홍규 감수, 도서출판 이파르(02-707-3763) 펴냄, 1만5천원

“그렇지요!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됩니다.” 학교 제도의 폐지, 병원 제도의 폐지, 공동체의 회복 등 근대사회의 ‘제도화’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사상가 이반 일리히의 마지막 육성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의 타락을 비판한다. 근대사회의 진정한 특이성은 기독교 복음을 제도화하려는 뒤틀린 시도가 낳은 결과라고 일리히는 말한다. 최선의 것이 타락하면서 비길 데 없는 악이 나타났다.

일리히는 18년을 사제로 살았다. 로마 교황청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며 파문당하기 전까지 신부였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교황청의 제안을 거부하고 미국 북부 맨해튼 푸에르토리코 이주민 교회의 신부로 간다. 가톨릭 사회의 위계에 부딪혀 떠나기 전까지 그는 헌신적으로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 뒤 멕시코에서 국제문화형성센터(이후 국제문화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고 여름학교를 만든다.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젊은 신부들이 찾아와 그를 보좌했다. 권력 없는 교회를 만들려 한 것이다.

일리히는 현대 서구 세계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신으로 여긴다. 이의 근거로 그는 사마리아인의 일화를 든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고 물었을 때 예수는 거의 죽은 상태로 길가에 버려진 한 남자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두 명의 성직자는 그냥 지나가고 이방인인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그를 도와준다. 많은 교회에서는 이 일화를 ‘우리가 이웃에게 무엇을 행할 것인가’에 대한 행동 규칙과 윤리적 의무를 강조하는 설교에 이용한다. ‘착한 사마리아인’ 미국은 분쟁지역에 대한 간섭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예수는 원래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 일화를 이야기했다. 일리히는 이 일화가 “누구나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파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초기 기독교 사회의 공동체주의는 타락했다. 교회는 즉각 은총을 줄 수 있는 기계로 변하고 말았다. 종교는 바로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되는 가장 적절한 예가 돼버린 것이다.

광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한 녹취가 책의 근간이 되었으며, 엮은이의 소개와 박홍규 영남대 교수의 해제가 난해한 일리히의 사상을 보좌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물의 자연사〉

〈물의 자연사〉

〈물의 자연사〉
앨리스 아웃워터 지음, 이충호 옮김, 예지(031-900-8060) 펴냄, 1만3800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공학자인 저자는 보스턴 항구의 슬러지(침전물)에 포함된 물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는 이 조사에서 쓸모없거나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습지, 강가 모래톱, 구불거리는 곡류가 물을 깨끗이 하고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이 순환하는 시스템을 따라가며 물과 땅과 생물이 이뤄내는 놀라운 협업의 현장을 보여준다.


광고

〈관용〉

〈관용〉

〈관용〉
웬디 브라운 지음, 이승철 옮김, 갈무리(02-325-4207) 펴냄, 1만8천원

‘톨레랑스’(관용)가 다문화 제국에서 통치 전략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20여 년간 관용 담론은 탈정치적 효과를 생산해왔다. 관용론자들은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의 문제를 불관용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개인의 태도와 감수성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차이를 가진 소수자를 ‘관용받아야 할’ 수동적 주체로 만들어버린다.


〈철학 vs 철학〉

〈철학 vs 철학〉

광고

〈철학 vs 철학〉
강신주 지음, 그린비(02-702-2717) 펴냄, 3만5천원

56개 주제에 대해 라이벌 철학자 112명을 내세워 동서양의 철학을 살핀다. 각 꼭지는 질문을 던지고 질문이 등장한 역사적 맥락을 설명한 뒤 질문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철학자의 사유를 대비한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이 경계 없이 만난다. ‘의미란 먼저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 면에서 플라톤과 노자는 비슷하다. 이와 반대로 루크레티우스(에피쿠로스학파)와 장자는 공히 ‘의미란 나중에 구성되는 것’라고 생각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마틴 켐프 지음, 오숙은 옮김, 을유문화사(02-733-8152) 펴냄, 2만5천원

예술과 과학으로 시각물의 역사를 조망했다. 저자가 서술 전개의 도구로 삼는 것은 ‘구조적 직관’이다. ‘구조적 직관’은 예술과 과학의 이미지들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테마로, 이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공통된다. “예술과 과학은 둘 다 지식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시각적 직관은 미지의 세계 속으로 더듬어나가는 가장 막강한 도구 중 하나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