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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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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영처럼 늙어라

‘평화로운 쾌락주의자’, 비가 새는 집을 짓는 건축가
등록 2009-12-30 10:56 수정 2020-05-03 04:25
건축가 조건영.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건축가 조건영.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조건영(63)은 건축가이지만, 내가 그와 만난 건 건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때 나는 기자였는데, 기사와도 관련이 없다. 오로지 단골 술집(첫 회에 소개한 ‘소설’)이 같았고, 거기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인생의 대선배(그는 나보다 16살 많다)를 보고 잠깐 합석해 인사차 술 한두 잔 마시고 오곤 한 게 시작이었다.

1996년으로 기억한다. 왕자웨이 감독 영화들의 촬영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도일이 ‘소설’에 왔다. 그가 촬영을 맡은 한국 영화의 한 장면을 소설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그날 소설에 들렀더니, 조건영과 20~30대 남녀가 술 마시는 자리에 도일이 합석해 있었다. 왁자지껄했다. 특이한 건, 나이 든 남자들과 20대 여성들이 함께하는 이런 자리에선 나이 든 남자들이 떠들고 젊은 여성들은 분위기를 맞춰주는 정도이기 쉬운데 거기선 젊은 여성들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들떠 있던 도일도 눈빛이 선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요란하면서 평화롭다는 건 모순인데, 이들은 세대·인종 구분 없이 그렇게 어울리고 있었다. 사건 기자로 꼰대처럼 세상을 째려보며 살던 내게 그 광경은 전위적이고 삐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건가? 아니, 이렇게 놀 수도 있는 건가?’

그보다 조금 뒤에 팝그룹 ‘CCR’의 내한 공연이 있었는데, 조건영과 그 일행들이 그걸 보고 소설에 왔다. 타고 오던 택시의 기사를 꾀어 술집에 데리고 왔다. 택시 기사는 그날 영업을 포기한 채 대취해서 집에 갔다. ‘참 거침없이 노는구나!’ 조건영은 가장 연장자임에도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하거나 뒷수습을 걱정하는 일이 없었다. 또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과 술 마시는 자리에 다른 남자가 끼어들면 견제하려 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남을 견제한다는 걸, 그는 아예 배우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권위적이지 않고, 자기 말 많이 안 하고, 한참 연하인 이들(주로 여자들이긴 하지만)의 얘기를 잘 듣고…. 이런 남자들 더러 있지만 그 정도가 조건영만 한 이를 나는 60대는 물론이고 50대에서도 아직 보지 못했다.

쾌락주의자? 쾌락주의자인 건 맞는데, 그렇게 단언하기엔 너무 평화롭달까? 내가 파악하는 조건영이라는 캐릭터엔 모순이 있다. 그런데 어떤 모순은 매력적이어서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영향을 끼친다. 남자 선후배, 동료와 두루 잘 어울리던 내가 그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턴가 여자 후배들과만 놀고 있었다. 나중엔 그 재미로 신문사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문사를 그만둘 때 여자 후배들(8~10명)에게서만 문자가 왔다. ‘보람찬 직장 생활이었구나!’

돌이켜보면, 내가 조건영의 건축과 상관없는 게 아니다. 그가 설계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건물을 15년 동안 다녔다. 1991년 거기 입주할 때 그랬다. “돈도 없는 회사가 네모반듯하게 지어서 가용면적이나 늘릴 것이지 멋을 부리긴.” 다니다 보니 불편했다. 화장실을 적게 지어서 아침이면 ‘큰일’ 보려는 이들이 이 층, 저 층의 화장실을 찾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대이동이 벌어졌다. 조건영이 지은 다른 집에도 가봤다. 하나같이 화장실과 욕실이 코딱지만 했다. 누군가 조건영의 집 철학을 이렇게 분석했다. 아늑함, 쾌락 다 추구해도 좋은데 최소한의 불편함은 지고 살아라, 그 정도의 긴장은 있어야 그게 사는 거다…,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황인숙이 쓴 시(‘집1’)에 조건영의 말이 인용돼 있다. “비가 전혀 새지 않는 집은/ 살아 있는 집이라 할 수 없다네.”

한번은 조건영이 지은 집에 사는 이가 운영하는 카페에 갔다. 조건영이 카페 주인에게 “집 한번 보여주라”고 보채는데 주인이 한사코 거절했다. 조건영이 내게 말하길, 사람 살게 설계하기가 무척 힘든 자투리 땅에 어떻게 겨우 지었는데 거기 잘 살고 있는지 정말로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을 공개하지 않는 주인의 심리를 알 것 같았다. 모르모트가 과학자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험 결과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닐까.

몇 해 전 에 연재된 ‘임재경 회고록’에 조건영 얘기가 나온다. 1980년 5월 민주인사들이 붙잡혀가고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조건영이 광주 사진을 외신에 전해주기 위해 뛰어다녔다는…. (조건영은 그 직후에 공안기관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왜 안 그랬겠나. 당대의 싸움을 피한 이와 마주한 이는 나이 들어 웃는 표정에 온유함의 크기가 다르다. 투사나 지사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말하지만, 그에게선 정의감과 반골 기질이 수시로 배어나온다.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게 음모론으로 치달아서 문제지만. 몇이서 그랬다. 조건영이 죽으면 그건 무조건 미 중앙정보국(CIA)의 음모라고.

예나 지금이나 그는 젊은 세대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지금도 소설에 젊은 여성들을 가장 자주 데리고 오는 이이기도 하다. 나를 비롯해, 내 또래 소설의 단골들에게 그는 사표(師表)다. 저렇게 늙고 싶다, 아니, 늙지 않고 싶다.

임범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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