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나 공원을 개인 주차장으로 쓴다거나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서너 좌석을 차지하면 대번에 ‘전세 냈냐’고 욕을 먹는다. 함께 쓰는 공간이고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곳이니 당연하다. 사람에 따라 지분이 더 많고 적을 리 없다. 같은 이유로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출입을 멋대로 막거나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운동시설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한다. ‘노 시니어 존’이니 노인은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욕먹을 일이고 명백한 차별이다. 노인들이 수영장의 위생과 안전을 위협한다는데 에티켓을 지키는 것과 신체 노화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게 따지면 홍대 클럽이 가장 깨끗하고 안전해야 한다.
우리 동네 수영장에도 할머니가 많다. 이들은 노인이기에 앞서 그저 강습 회원들이다. 노인이라 넘어지기 쉬운 것이 아니다. 대개 지각해서 서두르거나 준비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친다. 탈의실에서 불쑥 말을 거는 이들도 있다. 옆 사람이 떨어트린 물까지 말끔하게 닦고, 어린이 회원이 흘리고 간 머리끈을 주워 행거에 조롱조롱 매달아두기도 한다. 노인이거나, 여자거나,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그런 성정의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은 가장 자주, 너무 쉽게 일반화된다. 온갖 편견에 시달린다. 이 사회는 유독 나이를 기준으로 활동 범위와 이동 반경을 통제하려 들고, 위험하다는 핑계로 노인들을 안전선 안에 가둬두려 든다. 노인이니까 수영장이나 헬스장에는 정해진 시간에만 오고, 유행하는 카페나 식당은 가끔씩만 오되 너무 길게 머물지 말라고 한다. 개인의 인지·운동능력에 따라서가 아니라 고령이면 무조건 운전면허도 반납하라고 한다. 바람직한 노인은 화분 속 식물 같아야 한다. 적은 비용으로, 통제 가능하게, 신경 쓰이지 않도록 조용히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노후 대비’라는 말은 어쩐지 수상하다. 늙은 뒤에는 일하거나 활동할 수 없으니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도록 넉넉한 자산을 미리 갖추라고 종용한다. 그게 어렵다면 고립을 준비하고, 차별을 예비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것은 차별을 넘어 혐오다. 마사 누스바움이 지적했듯 혐오는 두려움에서 온다. 사람들은 노인이 되기 무서운 것이다. 노인이 겪는 불이익, 가난,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노인으로 사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다. 실제 한국 노인의 삶은 무척 비참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하는 노인 비중은 가장 높지만 노인 빈곤율이 최고 수준이다. 일자리의 질이 변변치 않은 탓이다. 일하는 노인의 절반 이상이 임시직 일용근로자일뿐더러 한 달에 채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그러니 당장 내 눈앞에 노인이 보이지 않기를 원하고, 노인이 취약한 원인을 ‘자기 관리’도 못한 개인의 나태와 무능에서 찾으며 혐오한다.
나의 노후를 기꺼이 이 사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게 그리 두렵지 않을 것이다. 가진 자산이 많지 않아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해서 내 앞가림을 할 수 있다면, 건강관리를 위해 돈 들이지 않고 운동하며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맛집에 가고 유행을 흉내 내며 ‘동시대’를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면 더 이상 ‘늙은 게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일자리를 차별하지 않는 사회여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결국 최고의 노후 대비는 차별 없는 사회를 ‘함께’ 만드는 데 있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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