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레이모 지음, 김혜원 옮김, 사이언스북스(02-517-4263) 펴냄, 1만1천원
쳇 레이모 교수는 미 스톤힐대학의 물리학·천문학 교수다. 그는 37년 동안 매일 매사추세츠 노스이스턴 마을의 집에서 대학까지 걸어갔다. 거리는 1마일, 1.6km밖에 되지 않는다. 걸음으로는 3천 걸음. 37년을 걷다 보니 붉은어깨검정새들이 둥지 트는 소리가 개울가에서 언제 들리는지를 정확히 예상할 수 있고 청개구리들이 개굴대기 시작하는 순간도 알게 됐다. 하나 더 안 것도 있다. 어떤 풍경도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1마일 속에 우주가 담긴다.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건축과 역사와 개인사가 에 퇴적물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걸음은 제니 린드 가에서 시작된다. 제니 린드는 1850년대 흥행가 바넘이 미국에 데려온 스웨덴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다. 동부 해안을 매료시킨 이 신의 목소리는 이 거리에 남았다. 이것이 거리 이름이 생겨난 ‘짧은 역사’다. 이 마을에는 1870년 삽공장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삽공장은 수력을 이용해 공장을 돌렸다. 이 물을 떨어뜨리는 중력은, 태양이 E=mc²의 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증발시키고 물의 순환이 계속되는 흐름 속에 위치한다. 댐을 건설하는 등 모든 태양에너지를 쥐어짜내려던 노력은 3억 년 전 퇴적된 석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에 자리를 내준다.
150년 전이라면 이 1마일은 삽공장의 소음으로 가득 찼을 테다. 이곳 뉴잉글랜드는 새로 온 영국인들이 숲을 없애고 경작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공장은 더 유리한 강 지역으로 옮겨가고, 농민들도 돌덩어리 땅 대신 다른 넓은 경작지를 찾아가면서 이곳은 ‘한층 세련된 자연’이 됐다. 의식적인 노력도 한몫했다. 늑대와 곰과 방울뱀은 한때 계획적인 박멸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공생관계로 변했다. 작고 민첩한 붉은다람쥐가 사는 유일한 숲이 됐다. 멸종식물 개불알난이 여기서는 지천으로 핀다.
지도 제작자인 팀 로빈슨이 한 말대로 쳇 레이모의 걸음은 그 거리에 가장 어울리게 적절했다. 1마일 속에 우주가 담겼다. 말 그대로 우주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박홍규 지음, 홍성사(02-333-5161) 펴냄, 1만4천원
인디언 사회의 아나키 민주주의는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였다. 지리상의 발견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이 민주주의의 ‘발견’이었다. 이 발견은 미국 헌법, 프랑스혁명까지 영향을 미친다. 박홍규 교수는 이렇게 상식을 재점검하도록 만든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국가주의에 ‘아나키즘’으로 제동을 걸었던 박홍규 교수가 인디언 아나키즘을 재발견했다.
막스 갈로 지음, 노서경 옮김, 당대(02-323-1315) 펴냄, 3만6천원
장 조레스는 프랑스 통합사회당의 지도자이자 일간지 의 창간인이다. 그는 1914년 7월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음을 맞는데, 그의 죽음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중요한 사건으로도 간주된다. 장 조레스가 굽힘 없이 주장한 것이 ‘반전’이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개인주의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의 저자 막스 갈로가 역사소설의 형식을 빌려, 기록과 증언에 기초한 일대기를 작성했다.
로힌턴 미스트 지음, 손석주 옮김, 아시아(02-821-5055) 펴냄, 1만7900원
인디라 간디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1975년, 대학생 마넥은 기숙사를 나와 어머니의 고교 동창 디나의 집에서 하숙을 한다. 디나는 불가촉천민 출신의 재봉사를 고용한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삼촌 이시바와 조카 옴프라카시는 무슨 일을 시키든 “문제없다”고 말하는 성실한 사람이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인도의 카스트·여성·종교·인종 문제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
김용석 지음, 휴머니스트(02-335-4422) 펴냄, 2만5천원
‘서사철학’은 철학자 김용석이 만들어낸 용어다. 이야기가 중요해진 시대에 인간의 본능까지 파고들며 스토리텔링을 문화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서사철학은 철학의 입장에서 행하는 모든 이야기 탐구를 지칭한다. 부제는 ‘이야기 탐구의 아이리스’. 아이리스는 무지개 여신이다. 무지개는 자연현상 가운데 독특하게 ‘구성’된 것으로 물방울과 햇빛이 만난 자연의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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