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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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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실태 고발 속 자기모순

전 법조기자가 읽어본 <불멸의 신성가족>…
법조계의 그릇된 문화 낱낱이 파헤쳤지만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도
등록 2009-05-28 05:23 수정 2020-05-02 19:25

등하불명이라고 했던가. 1년 반 남짓 법조팀 소속으로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을 출입하던 시절엔 ‘그것’을 잘 몰랐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수사 현안과 판결을 따라가기에 바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법조팀을 떠난 뒤 ‘그것’과 관련한 소리를 많이 듣게 됐다. 전직 법조기자라 대하기 편해서였을까? 술자리에서 만난 상당수 법조인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변호사 업계가 얼마나 불법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얘기하며 ‘그것’의 존재를 언급하곤 했다.

〈불멸의 신성가족〉

〈불멸의 신성가족〉

바로 브로커 얘기였다. 한 부장검사는 “브로커에게 수임료 30%를 떼주는 것은 불문율이다. 문제는 대다수 변호사들이 브로커와 연결돼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판검사·변호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을 안 한다”고 했다. “검사장 승진 떨어지면 나가서 돈 벌지 뭐가 아쉽냐고? 솔직히, 아무리 검찰에 오래 있었다고 해도 변호사 개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영업이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브로커도 써야 하는데, 잘될 수 있을지 두려운 것이다.”

검사장까지 지내고 퇴임한 한 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브로커가 없으면 수임을 할 수 없다. 누가 간판만 보고 변호사를 찾아오나. 사람들은 누군가를 통해 ‘어떤 변호사가 약발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게 결국 브로커를 통해서 찾아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브로커 자체가 불법이거니와 탈세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수임료의 30%를 브로커에게 떼어주고, 40% 가까이 되는 부가세와 소득세를 내고, 각종 운영 경비를 빼고 나면, 남는 돈은 수임료의 10~2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변호사가 수임료 축소 신고를 당연스레 여긴다.

법조 브로커, 신랄한 공론화

이런 점에서 은 크게 주목받을 만한 책이다. 지금까지 법조 브로커 문제를 제대로 다룬 저작도 거의 없고 이 문제가 공론화된 적도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는 소수 엘리트로 구성된 법조인 집단을 지칭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동 저작인 에서 ‘신성가족’이란 말을 따왔는데, 브로커는 ‘신성가족의 제사장’으로 명명된다.

“신성가족이 품위를 지키며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반인들과 이들을 중개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모든 지저분한 업무는 당연히 중개인들의 몫이 됩니다. …대형 로펌이 고문들에게 왜 거액을 지불하는지 생각해보면 그들이 브로커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197·211쪽)

이 책에서 보이는 법조계의 실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회식 자리에서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건넨 상품권을 거절한 검사 때문에 전체 분위기가 험악해지더라는 검찰의 조직 문화, 대법관의 지방법원 사무감사를 앞두고 법원장이 나서서 어느 음식점에서 어떤 음식을 대접할지 예행연습까지 하더라는 법원의 의전 문화, 여성의 재력과 외모 다음으로 성격을 본다는 사법연수원생들의 선 문화, 법조계에 동화돼 권력을 함께 누리는 법조기자 문화 등이 낱낱이 소개돼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가능한 이유는 ‘원만함’이라는 말로 포장된 신성가족의 이데올로기가 끊임없이 강요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법조기자 인터뷰 부분엔 의구심

이렇듯 누구도 깊이 다루지 않은 법조계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지만,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다. 김두식 교수는 “자극적인 기사를 부풀려 생산해내는 신문들은 무책임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어도 그걸 기사화하고 사과하는 신문은 거의 없습니다. 보수 신문이든 진보 신문이든 이 점에서는 대동소이합니다”(293쪽)라며 가 보도한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부인의 편입학 청탁 관련 금품수수 사건 보도를 예로 들었다. 가 의혹을 보도해 ‘총장을 날렸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는데도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검찰이 섣불리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다른 검사나 관계자들의 멘트를 인용”하면서 적당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부인이 편입 준비생 학부모로부터 2억원을 건네받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정 전 총장 또한 이를 인정하고 도의적인 차원에서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물론 보도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돈을 돌려줬고 직원에게 실제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며 정 전 총장 부인을 불기소 처분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라면,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았다가 응시생이 떨어진 뒤 돌려준 총장 부인을 불기소한 검찰 결정에 따라 가 사과문이라도 내야 했다는 것일까? 또 자진 사퇴했던 정 전 총장은 결과적으로 불기소 처분이 난 만큼, 신영철 대법관처럼 버티기라도 해야 했다는 것일까? 더욱 엉뚱한 점은 이 사건이 서울 서초동 법조기자들의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법조 출입 경험도 없는 사건팀 기자가 쓴 기사를 바탕으로 법조기자의 기사 작성 행태를 평가한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면담한 법조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인용해가며 이같은 주장을 폈는데, 해당 기자의 녹취록을 보면 진짜 법조기자가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적지 않다. 책에 등장하는 한 기자는 자신의 소속부서 부장을 “부장님”이라고 부르는데(292쪽), 중앙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사, 통신사 등 중앙 언론사에서는 회사 선배를 부를 때 “김 선배” “박 부장”이라고 할 뿐 ‘님’자를 붙이지 않는 게 하나의 문화다.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법조기자의 말이다. “신문사 사람들도 요즘은 조사를 받는 일이 많아서, 그들이 (검찰에) 조사받으러 오면 그때마다 부탁을 하는 것이 ‘법조기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편집국장님이 이번에 조사받는데 어떻게 진술서로만 안 될까요?’라든지 ‘저희 선배가 하나 조사받는데 살살 해주세요’ 같은 부탁을 일상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미리 가서 기름칠 좀 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156쪽)

하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 회사 기자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조사받는 것과 관련해 검사를 찾아가 말을 꺼내본 적도 없고, 그런 지시를 받아본 적도 없다. 물론 해당 기자가 자신은 그랬다고 말한다니 할 말은 없지만, 모든 법조기자가 그렇게 생활하는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일 수밖에 없다.

어색한 부분은 또 있다. 이 기자는 편집국장이 조사받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보도와 관련해 중앙 언론사 편집국장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일은 거의 없다(법조기자 경력이 꽤 되는 주변 기자 여럿에게 그런 사례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한결같이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이는 편집국장이 검찰이 부를 수 없는 높은 자리여서가 아니라, 기사와 관련돼 검찰 조사를 받는다면 기사를 쓴 기자와 기사를 고치거나 출고한 데스크(부장)가 조사받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소속 부서장에게 ‘님’자 호칭을 붙이는 법조기자가 누구인지, 편집국장 검찰 조사를 예로 들어 기자의 청탁 문화를 얘기하는 법조기자는 도대체 어떤 기자인지 궁금함이 커진다.

‘신성가족’ 규정과 어울리지 않는 결론

사실 이 책의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따로 있다. 김 교수는 신성가족을 깰 대안으로 ‘판검사들에게 말 걸기’를 제안한다. 이는 책 뒤표지에 노출시킬 만큼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판검사들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지도 모릅니다.”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라는 뜻의 신성가족이라는 용어를 빌려 법조계의 폐쇄적인 시스템을 지적하더니 ‘판검사에게 말 걸기’를 하라? 일반 농민들의 생활과 괴리되어 호화로운 삶을 살아온 왕실 가족을 한참 비판하더니, 농민들에게 “편한 마음으로 왕족들에게 말을 걸어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세상에 어떤 신성가족이 말을 건다고 눈 녹듯 사라질까. ‘신성가족’이라는 규정이 적당했다면, 그 신성가족을 깨기 위한 적극적인 대안이 뭔지를 보여주는 것이 순리에 맞다. 법원이나 검찰의 인사제도를 어떻게 개혁해야 한다든가, 브로커를 없애기 위해 수임 내역을 공개하게 해야 한다든가….

물론 ‘판검사에게 말 걸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권유를 하려면 “판검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주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돼 있습니다”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 전제는 ‘신성가족’이라는 평가와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저자의 ‘신성가족’이라는 규정이 ‘오버’이거나, 충분한 고민 없이 자기모순적 결론을 내놓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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