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내일하는 사이’는 94살 할머니 임봉근씨가 손녀 임다운씨(왼쪽)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손녀가 할머니에 대해 쓴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완벽한 길동무가 돼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이듦이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고령에 책이 웬 말인가. 푸르른 생각이 넘칠 때도 생각조차 못한 일이야. (…) 살날이 많지 않은 시점에 죽기 전에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하려는 너의 의도가 고맙고…. 아무튼 너와 나 최선을 다해 웃음거리는 면해보자꾸나. 너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하랴. 책이 나올 때까지 건강해야 하고 정신 차려야 하고….”
이 애틋한 발신인은 1931년생, 올해 만 94살이 된 임봉근 할머니다. 수신인은 60살 어린 손녀인 회사원 임다운씨. 두 여자가 뭉쳐 ‘오늘내일하는 사이’(안온북스)를 펴냈다. 임씨는 “할머니 나이가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는, 패드립 섞인 제목”이라며 유쾌한 농담으로 입을 열었다.
이 책은 헌신적인 노년의 희생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보통 할머니들은 내 새끼 먹으라 챙겨주는데, 우리 할머니는 제일 좋은 걸 본인이 드시거든요.” 오메가3와 비타민을 보내면 글루코사민도 보내라며 당당하게 요구하고, 가족 나들이 중 메뉴가 맘에 안 들면 “내려줘라, 혼자 갈비탕 먹고 가련다”며 차에서 내린다. 가수 장민호와 연애하는 꿈을 꾸고 손녀사위에게 “모름지기 남자는 애무를 잘해야 한다”며 특강을 펼치면서도 정작 본인은 키스 한번 못해본 ‘숙맥'이다.
이 통통 튀는 면모 이면에는 매일 복지관에 출석해 한시 풀이와 백세 체조를 챙겨 하는 90대 노인의 성실한 일상이 있다. 성공한 어르신의 회고록도, 뒤늦게 한글을 깨친 뭉클한 사연도 아닌, 현재 삶에 충실한 한 인간의 생생한 기록.

‘오늘내일하는 사이’는 94살 할머니 임봉근씨가 손녀 임다운씨(왼쪽)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손녀가 할머니에 대해 쓴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완벽한 길동무가 돼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이듦이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책의 시작점은 코로나19 시절이다. “외로워 죽겠다”는 할머니의 전화에 덜컥 겁이 난 손녀가 제안했다. “편지를 써봐. 그럼 나도 답장 써줄게.”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쥐여준 편지는 어느새 200자 원고지 1800장 분량으로 쌓였다. 그리고 손녀는 답장 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에세이를 썼다.
이 두 사람만의 애틋한 비밀이 세상에 알려진 건, 임씨가 무대에서 선보인 스탠드업 코미디 덕분이다. “할아버지가 새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그날로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아이들 성(姓)까지 자신의 성인 ‘임’씨로 바꿨다고 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서효인 편집자가 책 출간을 제안했죠.”
부계 혈통 중심인 한국 사회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성이 같다는 이 기막힌 농담 뒤에는, 자식의 성(姓)을 바꿔야만 했던 뼈아픈 가족사가 숨어 있다. 가족의 치부를 활자로 남기기까지 작가의 고민도 깊었다.
“‘내 시각에서만 할머니를 좋게 포장하는 건 아닐까’ 막막했어요. 그때 작가 한 분이 제 고민을 듣고 ‘세상 모두에게 미움받아도 한 사람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는 매력적'이라고 조언해줬어요.” 다른 복잡한 일은 다 제쳐두고 ‘우리 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에세이’를 쓰겠다는 딸의 뚝심에, 상처의 당사자인 아버지도 응원을 보냈다. 아버지는 “조용히 사라져도 괜찮겠다 생각한 가족사지만, 비극으로 남을 뻔한 일이 딸을 통해 희극으로 바뀌어 나올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할머니에게도 각자의 서사가 있잖아요. 이 책을 읽고 거리에 나가면 평범한 할머니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할머니는 동네 벤치에서 만나는 느슨한 인연을 ‘길동무’라 부른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기꺼이 서로의 수신인이자 완벽한 길동무가 돼준 두 사람. 가족의 껄끄러운 상처마저 정직한 유머로 껴안은 이 특별한 에세이는, 나이듦이 두려운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길동무가 돼줄 것이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임다운의 플레이리스트
1. 롱롱TV
https://www.youtube.com/@longlongtv2023
치매를 앓는 96살 할머니를 돌보는 손녀가 운영하는 채널. 고단함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사랑이 묻어난다. 나와 할머니의 모습이 자주 겹쳐 보여 몇 번이나 훌쩍거렸다.
2. 이종범의 스토리캠프
https://www.youtube.com/@storycamper
어떤 이야기가 왜 재미있는지, 인물이 왜 매력적인지 업계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해주는 채널. 재미를 느끼는 신경중추를 새로 발굴하는 느낌이다. 오타쿠는 대단하다.
3. 전용현
https://www.youtube.com/watch?v=ScinWnR8kIM
천재적인 솜씨로 빚어낸 시티팝 리믹스를 만날 수 있는 채널. 내 최애는 ‘사랑의 차차차’. 더 많이 올려주세요, 선생님.
4. KBS 다큐온-인생은 코미디
https://youtu.be/l9htLUXhfqU?si=g0tuA0rLEpXbekGi&t=2205
할머니 이야기를 소재로 꾸렸던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

‘오늘내일하는 사이’는 94살 할머니 임봉근씨가 손녀 임다운씨(왼쪽)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손녀가 할머니에 대해 쓴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완벽한 길동무가 돼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이듦이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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