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자급자족 인생을 시작해보려 포도밭 옆 빈 땅을 일궜다.
포도밭 옆에 200평의 땅이 있다. 남의 땅이라 나무도 심을 수 없고 그동안 보리나 밀을 뿌려 관리해왔다. 제대로 수확하기가 어려워 대충 잘라서 닭들에게 던져줘 밀이고 보리고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봄이 되니까 저 밭에 무엇인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오른다. 나도 남들처럼 고구마와 감자를 심고 채소도 키워 먹고 싶다는 생각에 일단 잡초를 제거하고 고랑을 만들었다. 지금부터 진정한 자급자족의 인생을 시작해보는 것이다. 활활 의지를 불태운다.
“밭에 이랑을 만들었네. 뭐 심으려는데?” 동네 어른들이 와서 다들 묻는다. “올해는 농사를 제대로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뭐 심을 거 있으면 저한테 꼭 연락 주세요!” 지나가는 분들 붙들고 다짐을 한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요즘 뭐 심느냐고 묻고 남으면 좀 달라고도 한다. “비닐 멀칭부터 해야지. 풀 나기 시작하면 감당하지 못해.”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는 잡초 관리다. 나는 두 주먹을 쥐어 보이며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친다.
“감자 있어?” 가장 먼저 이웃 할머니의 감자 모종이다. 나는 바로 달려가 감자를 고른다. 흰 감자, 자주 감자 동글동글 예쁘기도 하다. 올해는 감자 실컷 먹겠구나. “지금 바로 심어야 한다!” 바로 심는다고 약속해놓고 며칠을 그냥 둔다. 자꾸 바쁜 일들이 생긴다. 저러다 감자 다 썩겠다 싶어서 일을 시작한다. 감자를 너무 욕심냈다. 너무 많이 가져왔다. 아무리 심어도 끝나지 않는다. 끙끙 앓으면서 감자를 심는다. 무슨 이랑이 이렇게 긴가 싶다.
“브로콜리 가져가. 한 판 있다.” 감자를 심고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데 브로콜리 농사짓는 아주머니 전갈이 온다. 후다닥 달려가 브로콜리 한 판을 얻어온다. 한 판이 너무 많다. 아무리 심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끙끙 앓으면서 브로콜리를 심는다. 한 이랑 다 심었는데도 반 판이 남았다.
“토란 좋아해? 우리 집에는 심을 데가 없네.” 이번에는 토란을 가져가라신다. 포도밭 아래 물 내려가는 고랑에 심으면 잘될 거라고, 가을에 토란국이 기막히게 맛있다 한다. 빗물 고이는 쪽에 삽을 찍어 구멍을 내서 토란을 한 알씩 넣는다. 토란 삽질에 완전히 나가떨어져 종일 누워 앓는다.
“상추랑 고수, 이런저런 모종들 사왔어. 이거 심자.” 이번엔 충주 시내 친구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 밭으로 간다. 상추를 심으면서 뭔가 아찔한 생각이 든다. 포도밭 농사만 해도 ‘쎄(혀의 방언)가 빠지는데’ 어쩌자고 또 밭농사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감자에 싹도 올라오기 전에 후회스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비어 있는 이랑을 세어본다. 토마토, 양배추, 옥수수, 오이, 고추, 들깨…. 한 줄씩 심어도 이랑이 남는다.
“지난번에 머위랑 명이나물 뽑아가고 싶다고 했지? 빨리 와라!” 머위와 명이나물 언덕을 가진 동네 아주머니의 전갈이다. 내가 왜 남의 머위와 명이나물을 탐했나 싶다. 그냥 거기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얻어와 먹으면 되었을 것을. 호미를 챙기고 비틀거리며 간다. “땅콩 좀 심을래? 얼마나 꼬신지 몰라.” 머위 캐러 가는 길에 만난 아저씨가 이렇게 말한다. 너무 큰 나의 텃밭 자급자족 계획, 뭔가 먹구름이 잔뜩 있는 느낌이다.
글·사진 신이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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