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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의 현재형은 소설의 미래형

공지영 <도가니> 정이현 <너는 모른다>, 두 작가의 연재 경험을 통해 본 새로운 서사
등록 2009-05-07 11:36 수정 2020-05-03 04:25

고우영 작가의 에는 신기한 ‘구멍’이 있다. 매 페이지 왼쪽 아래칸에 필선이 조금 다른 그림이 들어가 있다. 그 네모칸 그림의 공통점은 서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30도 굽힌 다리를 60도 굽히거나, 앞칸 인물의 표정이 좀더 격해졌거나 하는 등이다. 그 비밀은 ‘신문 연재’에 있다. 신문 연재 당시 그 네모칸은 광고였다. 단행본으로 펴내면서 고우영 작가가 그 칸을 ‘메웠다’. 그 칸의 서사는 그 칸끼리의 서사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신문 연재’라는 서사 말이다.

인터넷 소설의 현재형은 소설의 미래형 / 컴퓨터그래픽 조원두

인터넷 소설의 현재형은 소설의 미래형 / 컴퓨터그래픽 조원두

발가락 오그라드는 연재의 긴장감

2009년 문학계에는 새로운 연재 형식의 ‘기린아’가 등장했다. 황석영 작가가 을 시작한 2008년 2월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잡아야 하겠으나,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것으로 유명한 김훈 작가가 인터넷 연재에 합류하는 2009년 5월도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네이버 문학동네 카페 ). 현재 미디어 다음을 통해 공지영(·5월8일 연재 종료), 이기호(·4월17일 연재 종료), 인터넷 교보에 정이현(),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박민규(), 인터파크에 김경욱() 등 대형 작가들이 인터넷에 연재 중이다. 왕성한 작가들이 반년씩 인터넷 연재에 매달리다 보니 연재 작가를 찾기 힘들다는 계간지의 신음 소리도 들린다. 이 인터넷 연재라는 새로운 형식은 문학을 어떻게 틀어낼까. ‘인터넷 연재’의 독특한 ‘구멍의 연결 방식’, 서사는 무엇일까. 공지영, 정이현 두 작가의 경험을 중심으로 꿰어보았다.

공지영 작가의 는 농아학교를 배경으로 한 사회소설이다. 문체는 건조하다. 첫 회는 스산한 안개가 낀 무진으로 시작된다.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하는 데서 작가는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가령 62회. 마지막 부분 농아학교의 민수는 흥분해 격렬한 수화를 한다. 민수가 충격적인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확실하지만 수화를 못 알아듣는 주인공 강민호. 강민호의 시점을 따라가는 독자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아, 오늘은 금요일, 다음회는 월요일에나 나온다. 드디어 월요일, 63회 끝에 “그리고 제 바지를 벗겼어요”란 문장이 나오고 다음날, 긴장감을 높이며 ‘딴소리’. 65회에서야 그 내막이 밝혀진다. 인터넷 연재의 영리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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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인터넷 연재를 ‘신문 연재’와 똑같이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런 전략은 신문 연재에서 배웠다는 것. 그가 농담처럼 건넨 신문 연재와 다른 한 가지 점은 이렇다. “펑크 낼 수 있다는 거죠. 그전에 신문 연재를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쉬어간 적이 없어요. 꼭 한 번 펑크 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딱 하루 쉬었지요.”

공지영 작가의 는 원래 장편으로 기획하고 있던 작품이다. 인터넷 연재 제안이 와서 이 프로젝트를 빼든 것뿐이라는 것이다. 작가에게 다음 작품의 꼴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은 인터넷 연재라는 형식보다는 개인적 서사의 역사다. 이전 작품은 로 하나는 자전적 소설, 하나는 에세이였다. 다음에는 무겁고 건조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 “세간의 위로의 문학이라는 평가에서도 벗어나고 싶었어요. 잠언을 좋아해주시는데 이런 유도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객관적인 묘사만 두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이런 시도를 ‘우연’이라고 두고, 더불어 ‘본능적’이라고 더해 인터넷 연재의 구멍 하나를 꿰어본다. 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다음회를 궁금하게 한다는 점에서 추리적인 장치는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정이현 작가의 교보문고 연재작 의 첫 회는 궁금증의 레벨을 최고도로 높인다. 첫 문장은 이렇다. “시체가 발견된 것은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전 열시경이었다.” 1회의 발견 정황이 스타카토로 전해진 뒤, 2회부터는 김혜성의 가족사가 시점을 달리하며 전개된다. 그리고 김혜성의 집에 또 하나의 비극이 닥친다. 딸이 실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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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재현성에 흥미를 잃어가는 작가들

정이현 작가 역시 ‘범죄’를 중심으로 둔 소설을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중간 부분에 시체에 관한 것을 다 밝혀놓았고, 실종 사건도 명확하게 어떤 식일지 결론은 내리지 않을 생각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는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쌓아가는가에 관한 소설이다. “사건을 만나서 인물들이 서로 살짝 스며드는, 손을 잡았다가 놓기도 하는, 손을 놓았더라도 그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텐데, 그런 감정을 묘사하고 싶었어요.” 그 방식은 이전의 단편소설집 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다. “추리소설적인 사건이 일어나죠. 그런데 독자들이 왜 사건의 결말을 명확하게 밝혀주지 않냐고 할 정도로, 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불명확해요. 범인이 잡힌 사건이고, 무슨 발표를 했을지라도 그게 그건가, 아닌가 헷갈리는 식이죠.”

두 작가는 아무도 긍정하지 않지만 ‘추리 기법’이 두 소설에 공히 들어갔다. 두 ‘우연’에 기대어 진단해보자면, 대중에게 ‘읽히는’ 소설의 문법을 따르며 장르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박진(숭실대 교양특성화대학)씨는 2000년대 출신 작가들에게서 ‘탈현실의 상상력’을 주목한 바 있다. 박진 평론가는 “그것이 장르라고 칭해지든 칭해지지 않든 현실의 재현성에 작가들이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문화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다.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문학은 오히려 조금 늦었다”며 인터넷 연재에 대해서 이렇게 진단했다.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감수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 경향은 좀더 강해질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에 다중 시점과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짜넣었다. 마지막 장면 역시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몽타주 기법으로 처리된다. 그리고 공지영의 작품은 만화가 최규석의 삽화와 함께 연재됐다. ‘이미지화’가 ‘강제적’으로 추동되는 것이다. 최규석은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오가며 그린다. 현실적인 묘사는 판타지적으로, 이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끔찍한’ 이야기는 리얼하게, 그래서 끔찍하게 그린다.

두 작가는 인터넷 연재의 중요한 경험으로 ‘독자들과의 공감’을 들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규칙적인 3개월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해요.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요. 얼마 후면 반환점을 돌 테고, 또 마의 30km 지점도 만나겠죠. 무조건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지는 않을래요. (우리, 같이 뒤고 있는 거 맞죠?:)” 정이현 작가가 3개월 연재 뒤 올린 글이다. 작가는 “몇 개월 동안 지속이 되니까, 독자들의 삶 속으로 양치질하고 세수하는 일상의 요소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옆에서 본 친구같이 그들의 행로에 관심을 가져요. 상호 소통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견을 쓰면 작긴 하지만 영향을 주고받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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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도 “생각보다 악플은 없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글들이 많았어요. 어떤 때는 술이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었어요.” 소설 플롯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독자들이 결말을 어떻게 써주세요, 하는 게 압력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많이 읽혀서 괴로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알아준다는 게 큰 기쁨이었다. “쓰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면서, 단단하게 압축한 문장을 쓰고 나서, 알아봐줄까 두근두근 두려웠어요. 그런데 심혈을 기울인 문장이나 깊이 생각하고 쓴 문장을 다 알아보더라고요. 예전에는 평가를 접하는 게 평론가, 인터넷 서점의 리뷰, 블로그 검색이 다였는데, 신나죠.”

“본격문학 신인 등용문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공지영 작가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일이 더 있지 않을까 싶다. “그전엔 홈페이지도 없었는데, 포털이 연재를 권하든 아니든, 자율적으로 짤막하게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딸이 자주 들어가는 판타지 사이트를 방문해본 경험도 그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아마추어 글쟁이들의 방대함과 깊이에 깜짝 놀랐다. 이런 조심스런 전망도 해본다. “판타지뿐 아니라 본격문학까지도 어떤 의미에서 신인 등용문이 많이 없어지지 않을까, 독자와 승부하고 바로 책으로 엮이는 사이클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두 작가 공통적으로 인터넷 연재를 따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연재 작품은 독자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탄생했다. 새로운 인터넷 소설은 지금 현재형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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