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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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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올리버

등록 2009-01-09 16:05 수정 2020-05-03 04:25
<제이미 매거진>

<제이미 매거진>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정크푸드 사먹지 말고 집에서 해먹도록 해요. ‘오이 요구르트 소스를 뿌린 연어 티카’ 어때요? 요리에 자신 없다고요? 5분이면 충분하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엄마…가 아니라 제이미 올리버 선생님께서 혀 짧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영국의 대표적인 대중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한국에서도 케이블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꺼내 요리를 만들다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필요한 재료를 사러 가던 귀여운 요리사이자 영국 학교 급식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절반은 사회운동가인 요리사로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그의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직접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그가 소개하는 요리를 하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 힘들고, 개인적으로 나는 음식에 대해 열정이나 대단한 미각 따위는 전혀 없는, 요리와 멀어도 너무 먼 사이였다. 그런데 런던 생활 두 달 만에 그와 나는 (물론 TV 프로그램을 통해)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됐고, 언젠가부터 우리 집 테라스의 화분에서 바질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으며, 대여섯 가지 요리는 참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혹자는 기적이라고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비싼 물가 때문에 음식을 사먹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영국은 전자레인지 음식이 발달된 편이어서 동서양 대표 음식은 5분이면 뚝딱이지만, 특유의 플라스틱 향 때문에 금세 질린다. 둘째, 한국 음식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는 편이 아니라서 밥통조차 사지 않았고, 한국 음식을 사러 멀리까지 갈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 셋째, 음식에 절박해졌을 무렵 때마침 제이미 올리버가 가가호호 방문해 간단한 요리법을 전수해준다는 내용의 프로그램 가 방영되고 있었다. 넷째, 아이팟 팟캐스트에서 짧은 그의 요리 강좌를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그가 대형 슈퍼마켓 ‘세인스베리’의 광고 모델이어서 집 근처 세인스베리에 가면 그가 쓰는 재료를 쉽게 살 수 있다. 다섯째, 사생활 때문에 한창 시끄러운 고든 램지나 학교 수업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얘기만 나오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우아함(!)의 대명사 나이젤라 같은 ‘잘난 척+비호감’ 요리사에 비해 제이미는 일단 편안하다.

영국에는, 아니 전 유럽에는 나 같은 제이미 올리버의 제자가 수도 없이 많다. 프로그램 방영과 동시에 출간된 양장본 는 20파운드(약 4만원)가 넘어도(지금은 절반 가격으로 내려앉았지만) 몇 달째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이름을 딴 잡지도 창간됐다. 이름하야 (사진). 요리사 개인의 이름을 딴 잡지라니. 내용은 제이미 인터뷰와 제이미의 요리법, 그의 식기와 요리 도구 소개 등 온통 ‘제이미 올리버’다. 뿐만 아니라 독일 등 ‘요리 후진국’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으며, 유럽 어느 서점에든 제이미의 책은 고든 램지나 나이젤라의 책과 함께 꼭 진열돼 있다.

쓰다 보니 간증처럼 돼버렸지만, 어쨌든 선생님의 그림자라도 따라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선생님, 그런데 요즘 살이 너무 찌셔서 이러다가 선생님 요리 실력 대신 풍채만 닮게 되는 건 아니겠죠?”

안인용 한겨레 ESC팀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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