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어느 날, 식탁에 앉아 TV를 켜놓고 멍하니 퀴즈 프로그램 를 보고 있었다. (영국판 는 영화 에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의 원조다.) 쉬운 단계의 문제가 나왔다. 진행자인 크리스 태런트가 문제를 읽었다. “새뮤얼 존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지친 사람은 인생에 지친 것이다’라고. 이곳은 어디일까요?” 나이가 지긋한 여성 출연자는 문제가 끝나자마자 “런던이 최종 답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정답이었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천천히 런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그 문제는 꼬리를 물고 또 다른 문제를 던졌다. “진짜 런던에 지쳤다면 인생에 지친 걸까? 나는 런던을 떠나고 싶은가, 아니면 런던에 남고 싶은가? 그리고 런던에서의 지난 1년은 내 인생에서 어떤 시간이었을까?”
1년 전 망설임 없이 런던행을 택했지만, 생각해보면 대단한 기대나 두근거림으로 런던에 왔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한국에 대한 반감이나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이동처럼 느껴졌다. 서울을 떠날 때 그랬듯이 런던을 떠나는 지금도 런던에 대한 굉장한 미련이나 한국에 대한 반가움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런던에 남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한 번도 그렇다고 대답한 적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런던으로 올 때는 공부할 학교가 내 자리였고, 공부가 끝난 지금은 돌아갈 회사에 내 자리가 있으며, 그 자리에 돌아가는 것 역시 내게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니까.
런던이라는 도시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얘기를 하고, 나 역시 이 칼럼을 통해 많은 얘기를 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런던이라는 도시의 매력으로 꼽는 그 수많은 것들, 그러니까 멋진 갤러리나 가슴을 뛰게 했던 공연, 워털루 다리에서 본 석양 따위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보다 혼자였던 시간이 떠오른다. 아마 지난 1년은 태어나서 가장 오랫동안 혼자 지낸 시간이 아닐까 싶다. 베란다에서 햇볕을 즐기며 책을 읽었고, 멍하니 몇 분이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려고 창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으며, 여러 권의 책을 쌓아놓고 며칠 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나에게 런던은 삶에 대한 스트레스 지수를 체크하는 리트머스 종이나 호르몬 분비를 활발하게 해주는 분홍색 약이었다기보다, 조금 지쳐가기 시작하던 어떤 순간에 찾아간 작은 방 같은 공간이었다.
며칠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리고 처음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오히려 ‘런던’이라는 도시가 대단히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런던이든 서울이든, 그 공간에 매혹당하는 것보다 나에게 필요한 속도와 방식을 찾아내고 그 리듬을 타는 것이 진짜 지치지 않는 인생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느 곳이든 그곳에 내재된 기본 리듬에 자기를 맡긴다면 그 위에 더 멋진 멜로디를 얹을 수 있겠지만, 결국 어떤 리듬이든 그 움직임의 시작은 공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칼럼을 통해 런던에서 혹은 전자우편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런던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멋진 교수들, 그리고 칼럼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반가웠고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모두 다, 치어스(Cheers)!
안인용 한겨레 ESC팀 nico@hani.co.kr
*‘안인용의 런던콜링’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