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설렌다. 지금 회사원이 아닌 학생 신분이고, 학교 방침이 ‘주5일 등교제’일 리 없으니 주말이 딱히 기다려질 이유는 없다. 설레는 이유는 한 가지, 신문을 사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주로 신문을 읽는다. 신문을 사는 기쁨(이라기보다 독자가 신문을 사는 기쁨으로 인한 나의 기쁨)을 가장 잘 아는 ‘나는야 한국의 신문기자’이긴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 기쁨을 가장 효율적으로 즐기는 ‘나는야 빠듯한 유학생’이다.
내게 가장 효율적인 기쁨을 선사하는 신문은 특정 신문이 아니라 모든 신문의 주말판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발행되는 신문은 두껍다. 주말판 신문 안에 여러 개의 섹션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비닐로 싸인 매거진이 들어 있다. 비닐에는 주말 매거진과 특집 매거진, TV 가이드북, 그 주의 보너스 책자 혹은 DVD 등이 들어 있다. 뉴스 해설과 문화 관련 온갖 리뷰와 칼럼, 인터뷰, 패션에 인생 상담, 일주일치 TV 편성표까지 폭이 넓고 깊다. 그렇게 해서 3천~4천원이다. 주중 신문보다 비싸지만 이거 하나면 지난 일주일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주일을 예상해볼 수 있으니, (영국 신문업계의 사정을 떠나) 효율적으로 기쁘다.
런던 생활 초기에는 설레는 마음에 토요일에는 을 집어오고, 일요일에는 중에 하나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렇게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문제는 주말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읽어도 못 읽는 부분이 더 많다는 거. 결국 매주 하나씩만 사기로 했다.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마트에 가서 수북히 쌓인 신문을 뒤적이며 어떤 걸 살까 고민한다. 그럴 때 옆을 보면 늘 같은 고민을 나누는 이들이 있다. 일반 마트와 대형 마트에는 입구 쪽에 커다란 신문 판매대가 있는데 마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신문 주말판을 장바구니에 넣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일요일 오후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주 있는데, 카페 안을 둘러보면 테이블마다 신문 주말판을 펼쳐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조용히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나 를 단숨에 넘겨버리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영국에서는 온전한 ‘독자’ 신분이라는 점도 주말에 신문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신문을 일의 연장선에서 읽는 버릇이 있고, 회사에서는 아무 종이나 집어도 신문일 정도로 신문이 차고 넘치다 보니 신문이나 잡지를 ‘사는’ 재미를 잃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문 판매대 앞에서 온전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 ‘어떤 신문을 볼까’ 고민하다 보면 그 고민은 ‘어떤 신문을 만들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주말 매거진을 넘기다 보면 ‘esc’ 섹션을 준비하던 기간도 생각난다. 가끔 ‘살짝’ 표절성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몇 개월에 걸쳐 취재하고 준비한 매거진 표지 기사나 저돌적인 인터뷰, 섬세한 리뷰나 칼럼을 읽을 때는 짜릿하고, 또 부럽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문득 어서 돌아가 일하고 싶기도 하고, 공부보다 일이 적성이다 싶기도 하고, 지금 공부나 잘하자 싶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주말이 오고, 신문을 사고, 그러다 보니 4월이고, 시간은 가고, 그러면 일보다 공부가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문득 어서 돌아가 일하고 싶기도 하고, 다시 주말이 오고, 신문을 사고….(중얼중얼, 무한 반복)
안인용 한겨레 ESC팀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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