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을 성대모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다. 웅얼대는 듯한 말투와 부자연스러운 입 모양, 촌스러운 행동거지, 어딘가 어색한 표정에 커다란 가면을 쓴 것 같은 생김새까지. 그를 성대모사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 것은 얼마 전에 본 TV 프로그램 (사진) 때문이다. 은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해 10년 동안 꾸준히 영국 정치를 풍자해온 영국의 대표적인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다.
영국의 정치 풍자 코미디언인 로리 브렘너와 존 버드, 존 포천 이 셋이 이끌어가는 이 프로그램은 1시간 동안 다양한 스케치(단막극식 코미디)로 현실 정치를 풍자한다.
지난 6월 시작한 15번째 시즌의 첫 번째 에피소드 제목은 ‘블레임 게임’(The Blame Game). 이 에피소드는 경제위기와 이민자 문제, 런던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국회의원 세비 스캔들 등 14번째 시즌이 끝난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 영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뤘다. 고든 브라운을 비롯한 영국 정치인들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요리사 고든 램지 등 유명인들의 성대모사에 두 번 꼬는 영국식 블랙 유머로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지금 영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영국에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든지 나를 놀려도 좋아’라는 암묵적 동의를 의미한다. 정치 풍자를 하나의 완결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승화시킨 뿐 아니라 모든 신문과 방송은 정치와 정치인을 독하게 놀려먹는다. 영국에서 정치 풍자와 정치인 놀려먹기는 정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정치 풍자 없는 영국 정치는 별사탕 없는 건빵이나 다름없다. 영국 헌법에 모든 미디어는 정치를 대놓고 풍자할 엄연한 의무가 있으며 모든 국민은 정치인을 농담의 소재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렇게 정치 풍자를 즐기는 것은 일상적인 정치 참여다. 독한 농담을 즐기는 영국인들을 웃게 하려면 얼마나 더 독해야 하는지, 가끔은 정치인들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참 웃다 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웃다 보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 더 또렷해지고, 웃고 나서 뉴스를 보면 그 뉴스와 뉴스의 행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되니까.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무척이나 답답했다. TV 시청을 일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저 프로그램에서 저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니까 TV 시청이 지루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영국 정치에 지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라 단지 웃고 싶어서 영국 뉴스를 읽었다. 그러다 보니 웃음의 맥락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고, 더 잘 웃을 수 있었고, 계속 뉴스를 따라가게 됐다.
북한 관련 이슈도 종종 등장한다. 에서 중산층 영국인들의 이민자 반대와 차별을 비꼬며 ‘모든 국민을 탈출하지 못하게 해 이민자를 아예 만들지 않는 김정일의 정책을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배워야 한다’는 농담을 듣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
영국 정치 풍자 코미디언들 한 다섯 정도만 한국으로 급파해 한번 제대로 웃겨주는 프로그램 하나 만들면 좋겠다. 뭐 우리나라 정치하시는 분들을 영국식으로 놀려먹으면 열에 아홉은 노발대발하시며 명예훼손 혐의로 집어넣어 버리겠다 하실지 모르겠지만, 국민 열에 아홉에게는 큰 웃음 하나씩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아, 맞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니까 ‘대한늬우스’로 정부 차원에서 큰 웃음을 안겨주시더라. 영국 정치 풍자를 두 걸음 정도 앞서가는 대단히 자발적인 차원의 정치 풍자, 대단히 인상적이다.
안인용 한겨레 ESC팀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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