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학기 마지막 에세이 두 개를 제출한 다음날이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전날,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에 잠이 들어 정신을 놓고 한참을 잤다. 일어났더니 시계는 토요일 낮 12시께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걸 아느냐는 친구의 문자였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소식을 듣고 나니 정신이 멍해졌다. 도저히 인터넷 접속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주저하다가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속 한국은 혼란 그 자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에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고 싶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흘리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컴퓨터 파일에서 5년 전에 찍은 사진을 꺼내보았다. 거리에 놓인 촛불을 찍은 사진이었다. 2004년 3월, 한창 발로 뛰는 수습기자였던 나는 택시 안에서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돼 국회 앞에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니 바로 여의도로 가라는 전화였다. 그날부터 꽤 오랫동안 나는 탄핵 반대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여의도와 광화문을 날이면 날마다 지켰다.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외쳤다. 그리고 집회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어느 날 서울시청부터 광화문까지 꽉 찬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들고 있는 촛불을 보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전생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인연이 있었던, 꽤나 운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마 그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의 고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먼 곳에서나마 추모할 방법이 없을까 찾다가 영국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런던 뉴몰든에 분향소가 마련됐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분향소라고 했다. 분향소에 다녀온 사람들의 짤막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분향소에서 눈물을 흘릴 때 옆에서 같이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위로가 되었다는 글도 있었다. 뉴몰든 분향소에 가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일에 치여 가보지 못하고, 대신 지지난 목요일 조금이나마 가까운 런던 빅토리아역 근처 주영 한국대사관 분향소(사진)를 찾았다. 대사관 2층에 차려진 분향소는 크지는 않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국화를 헌화하고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노 전 대통령과 눈이 마주쳤다. 잘 가시라는 인사를 전했다. 한국에서 지구 반 바퀴나 멀리 떨어진 런던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이곳이 봉하마을이라고 되뇌었다.
방명록에는 이곳을 다녀간 100여 명의 이름과 노 전 대통령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외국인의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 있는 분향소 방명록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겠지만, 그래도 런던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자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런던에서, 아니 영국에서, 아니 한국이 아닌 모든 곳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칼럼 역시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인용 한겨레 ESC팀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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