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테임즈 강 풍경
런던에 오기 전에, 친구나 지인 중 멀리서 유학하는 이들, 특히 문화생활이나 사교활동을 하기보다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쩜, 공부도 공부지만 그 도시를 맘껏 즐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왜 그걸 못해? 촌스럽긴.’ 서울에서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했던 유학생활은 다음과 같다. ‘평일 아침에 공원에서 햇볕을 즐기며 산책을 하고 자전거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저녁에는 파티에 가고 주말에는 런던의 갤러리와 작은 책방을 다닌다. 틈틈이 기차로 영국의 다른 도시 여행도 다닌다.’ 이렇게 살 줄 알았다. 런던에 오기 전에는.
공원? 동네에 걸어서 5분이 채 안 걸리는 ‘힐리 필즈’라는 멋진 공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나의 몸, 나의 본능을 런던이 바꾸지는 못하더라. 자전거? 런던에서 자전거를 타려면 헬멧과 야광 조끼가 필수다. 그런데 도저히 그 조끼는, 입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런던 자동차 운전자들의 자칭 ‘끝내주는’ 운전 솜씨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데는 조끼를 입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파티? 노는 건 좋지만, 밤늦게까지 낯선 이들과의 어색한 대화를 진심으로 즐길 만큼 인내심이 받쳐주는 편은 아니더라. 여행? 얼마 전에 리버풀 가는 데 쓴 기차값이 얼마더라. 휴.
런던의 ‘낭만’도 비슷한 처지다. 런던은 멋진 도시이고, 30분이면 런던 중심부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유학생에서 관광객으로의 변신이 쉽지 않다는 거다. 관광객으로 런던에 왔을 때는 하루에 3시간씩 걸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런데 유학생 신분이 되고 보니 조금만 걸어도 ‘급피곤’해진다. 게다가 시간이 많은 것처럼 느껴져서인지 문을 열고 나가는데 찬바람을 동반한 비라도 내리면 먼저 영국 날씨에 대한 짜증이 밀려오고 나도 모르게 ‘날씨 따뜻해지면 돌아다니자’며 현관문을 굳게 닫는다. 게다가 마음먹고 시내에 나가면 눈에 보이는 건 다 세일하는 상점들뿐. 갤러리에 가다가 세일하는 가게가 보이면 주저 않고 들어가고 결국 양손이 무거워져서 중간에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환율의 압박도 관광 모드와 문화생활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무뎌진 나의 ‘관광’ 신경을 그나마 자극하는 건 누군가의 런던 방문이지만 늘 안내하기보다 따라다니는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처음부터 이 모양(!)은 아니었다. 지난가을, 막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나도 이제 런더너!’를 외치며 한 주 동안 런던에서 일어나는 문화 관련 소식을 세세히 정리해놓는 잡지 을 매주 사서 ‘이번 주말에는 어딜 가서 뭘 볼까’ 고민하곤 했다. ‘유명인이 얘기하는 런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특집에 나온 모든 곳에 가보겠다는 다짐도 했고, 그중 몇 군데는 가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생활을 위한 나의 ‘타임’이 정말 ‘아웃’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우겨본다). 즐겨야 할 런던의 ‘낭만’이 많으니까. 이번 주말 계획부터 세워보자. 그런데 일기예보에서 주말 날씨 엉망일 거라는데. 그럼 다음주? 그런데 저녁 약속이 있네? 그럼 그 다음 주말…? 지도교수와 논문 면담하려면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다음…달? 뭐, 아직 7개월 넘게 남았잖아, 런던을 떠나기 전까지는.
안인용 기자 한겨레 ESC팀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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